'87체제' 후 첫 대법관 대폭 증원 현실로…관건은 1·2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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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체제' 후 첫 대법관 대폭 증원 현실로…관건은 1·2심 강화

연합뉴스 2026-02-28 20:58:2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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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26명 대변화…연구관 등 연쇄변화…"상고심 적체 해소" vs "하급심 약화 불가피"

'원벤치' 전원합의체 약화 '다수결 투표' 변질 우려…"3심 올라오는 건수 자체 줄여야"

李대통령 임기 내 증원 포함해 22명 임명…'진영 쏠림' 심화·사법의 정치예속 시각도

'대법관 증원' 법원 조직법 반대 무제한 토론하는 송석준 의원 '대법관 증원' 법원 조직법 반대 무제한 토론하는 송석준 의원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대법관 증원'을 핵심으로 하는 법원 조직법이 상정된 뒤 이를 반대하는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를 시작하고 있다. 2026.2.27 hkmpooh@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대법관 수를 현재 14명에서 26명까지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28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사법부의 대대적인 구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관 체제에 수정을 가하는 것은 이른바 '87 체제' 이후 처음이다.

대법관 수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 여러 차례 헌법과 법원조직법 개정에 따라 조정되다가 1987년 개헌 이후 대법원 구조는 현재와 같은 14명(대법원장 및 대법관 13명)으로 정해졌다.

2005년 법원행정처장을 대법관이 아닌 정무직 공무원이 맡도록 해 일시적으로 13명으로 줄었다가 2년 만에 14명으로 돌아온 뒤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입법을 주도한 민주당은 이번 대법관 증원으로 상고심 적체가 해소되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선 사실심 약화와 대법원 전원합의체 형해화, 사법부의 정치권 예속화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법사소위 통과한 재판소원법…대법원 상황은? 법사소위 통과한 재판소원법…대법원 상황은?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법원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법'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의 모습. 2026.2.12 ksm7976@yna.co.kr

◇ 대법관 4년간 3명씩 늘려 26명…李대통령 임기 중 22명 임명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추진한 이른바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증원)의 마지막 법안인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법안에 반대하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로 맞섰으나 24시간이 지나고 범여권 의원들의 종결 동의 투표를 거쳐 결국 통과됐다.

대법관 증원법은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법안 공포 2년 후부터 3년간 매년 4명씩 순차적으로 증원한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 전체 대법관 26명 가운데 22명을 임명하게 된다. 증원되는 12명에 더해 이 대통령 임기 중 퇴임하는 기존 대법관 10명의 후임까지 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논리는 대법관 증원으로 상고심 적체를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4년 상고심 본안사건(선거사건 제외) 처리 건수는 4만1천732건이다. 대법관 1인당 연간 평균 3천478건(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제외)을 처리하는 셈이다.

국민 입장에선 대법원에서 자기 사건이 충실하게 검토되는지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같은 맥락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받은 당사자들의 불만도 이어져 왔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민사, 가사, 행정 사건에서 상고 이유에 중대한 법령 위반 사항이 없으면 심리를 속행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1994년 대법원 재판을 효율화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판결문에 구체적 이유가 기재되지 않아 재판 당사자들의 불만이 있었다.

이번 법 통과로 대법관 1인당 사건 부담이 줄어들면 이런 심리불속행 기각이 줄어들거나 상고심 처리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재판소원법 법사소위 통과…대법원 청사 상황은? 재판소원법 법사소위 통과…대법원 청사 상황은?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법원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법'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의 모습. 2026.2.12 ksm7976@yna.co.kr

◇ 사법부선 "사실심 부실 명약관화"…"26명 전합은 다수결 투표" 의견도

그러나 사법 자원이 한정된 현실에서 대법관을 대폭 늘리면 "하급심 약화는 불 보듯 뻔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에는 대법관의 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관(법관)도 두기 때문이다.

현재 대법원에는 101명의 판사 재판연구관이 있는데 대법관 12명을 증원할 경우 재판연구관도 최소 24명·최대 101명 늘려야 한다는 추산이 지난해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나왔다.

총 3천300여명인 법관 정원에서 최대 200여명을 차출하면 1·2심을 다루는 법관 인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재판연구관은 이른바 '엘리트 법관'이 가는 보직으로도 알려져 있다. 1·2심은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를 살펴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법을 적용하는 '사실심'이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3심인 대법원 상고심은 '법률심'으로, 2심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건드리지 않고, 법 적용이 옳은지 여부를 따진다. 법률심에 과도한 판사 인력이 동원될 경우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따져 국민의 분쟁을 신속히 정리해주는 기능을 맡은 1, 2심이 부실해지고 이는 국민 생활에 직접 악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도 법원장들은 "단기간 내 다수 대법관을 증원하는 것은 사실심 부실화 등의 부작용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우려가 있다"며 일단 4명 증원을 추진하고 차후 사실심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 추가 증원을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4명은 대법원 1개 재판부(소부) 규모다.

전원합의체(전합)가 결국 다수결 투표로 변질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현재 대부분 사건이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심리되지만 파급 효과가 큰 중요 사건은 대법관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참여하는 전합에서 다뤄진다.

◇ 당대 문제 해결하는 '시대정신' 선도 기능 상실…'상고 제한이 현실적' 의견도

전합은 대법관 전원이 설득과 토론을 거쳐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갈등과 법적 분쟁 해결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전합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치열한 논의를 통해 당대의 핵심적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시대 흐름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데, '다수결 기구'로 전락할 경우 대법원 본연의 기능을 잃게 된다는 취지다.

구성원이 증가할수록 전합 구성이 어려워 미국(9명), 영국(12명), 일본(15명), 캐나다(9명) 등 외국의 최고법원 역시 대체로 15명 이하로 전합이 구성된다.

여기에는 단일 전원합의체(One Bench·원 벤치)를 유지해야 쟁점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런 점에서 사법부는 상고심 적체 해소 방안으로, 단순한 대법관 증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고심 자체를 덜어내기 위한 '상고심사' 제도의 도입을 건의·논의해왔다. '남상고'(상고 남용)를 줄일 방법으로, 고법 상고심사부, 상고허가제, 상고법원 등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본질은 상고심 건수 자체를 합리적으로 줄일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 1년에 다루는 사건이 100여건 안팎으로, '가장 집중해야 할' 시대적 사건에 역량을 집중하는 형태다.

익명의 한 고법판사는 "대법원 전합이 2006년 트랜스젠더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가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모든 대법관이 처음부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의식이 투철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수의 대법관이 나머지를 끊임없이 설득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진보적이거나 전향적인 판결은 설득을 통해 생각을 바꿔가며 나오는 것인데 대법관이 26명이 되면 설득이 아닌 다수의 의견대로 결론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활동한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는 이런 우려를 고려한 듯 '2개 연합부·1개 전원합의체'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 전합과 같이 13명 규모의 '연합부'를 2개 두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에 한정해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심리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실제 이런 방식을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할지는 법원이 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처럼 연합부 2개를 각각 민·형사로 나눠 운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자칫 연합부와 전합 간 '옥상옥' 구조가 될 수 있어 신중한 설계가 필요하단 게 법조계 시각이다.

전국법원장회의, 발언하는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전국법원장회의, 발언하는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2.25 [공동취재] saba@yna.co.kr

◇ 법조계 일각선 '사법부 예속화' 정치적 의도 의심

법조계 안팎에선 무엇보다 이처럼 단기간에 급격한 대법관 증원에는 사실상 사법부를 예속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2010년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좌편향'을 지적하며 '사법개혁'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돌연 '상고심 적체를 해결하자'며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4명으로 증원하자고 주장했다. 주장대로라면 이명박 당시 대통령 임기 안에 상당수 대법관이 교체되는 탓에 민주당은 "사법부 장악 음모"라며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상황은 16년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지난해 5월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에 대한 대법원 전합의 파기환송 판결 이후 민주당은 '사법개혁' 추진에 속도를 냈다.

야당과 사법부에선 반대했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 주도로 법안이 통과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법관 26명 중 22명(대법원장 포함)을 임명하게 된다.

국민의힘에선 현 정권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대거 임명해 대법원 구도를 바꾸려는 시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코트 패킹'(court packing·법원 채우기)이라는 것이다.

현 정부가 대법원의 '보수·진보 경합' 구도를 일방적으로 진보 우위로 바꿔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한다.

민주당에선 산술적으로 이 대통령뿐 아니라 향후 모든 대통령이 임기 동안 21∼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한다는 점을 들어 '사법부 장악' 의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법원 내부에선 정치적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매년 평균 4∼5명의 대법관이 교체되면 소부나 전합 안정성이 떨어져 심리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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