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주 더봄] 사랑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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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주 더봄] 사랑과 믿음

여성경제신문 2026-02-28 13:00:00 신고

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임 /구글 나노바나나
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임 /구글 나노바나나

“말해 봐.”

“······ .”

“어디 갔었어? 지금 엄마 오고 있어. 솔직히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원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채근했다. 은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은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탁자 모서리에 두 눈을 박았다. 

“엄마 오기 전에 말하는 것이 좋아. 그래야 내가 쉴드라도 쳐주지.”

은우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원장실은 작았으나 이곳의 침묵은 크고 차가웠다.

“지금 말하면 엄마에게 자습실에서 자습했다고 할 수 있어.”

원장은 침착한 톤으로 은우를 설득했다. 하지만 은우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선생님···” 

은우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뛰어왔는지 숨이 찼고 양 볼이 붉었다. 달려서라기보다 열이 오른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이었다.

“우리 은우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엄마와 은우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은우의 눈동자는 떨렸다. 그 떨림은 엄마가 왔다는 안도감과 엄마에게 뭔가를 들키면 안 되는 조급함이 함께 있었다.

“은우. 지금 막 왔습니다. 친구하고 놀다 온 모양입니다. 왔으니 됐습니다. 오늘은 수업 시간도 지났고 늦었으니 어머님과 함께 귀가 조치하겠습니다. 내일 은우 보내 주십시오.”

“성은우, 어디 갔었어? 학원에 간다고 했잖아? 그것도 아침 일찍, 온종일 어디서 뭐 한 거야? 거짓말하고!”

은우의 얼굴은 흔들림이 없었다. 엄숙한 표정으로 입술을 굳게 닫고 있었다. 

“말해 봐.”

“······ .”

“어머니, 됐습니다.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한다고 다짐받았습니다. 무사히 돌아왔으니 됐죠.” 

원장은 은우와 엄마를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원장은 이 둘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분위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었다. 차가운 침묵이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는 못내 아쉬운 몸짓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은우와 함께 학원 밖으로 나왔다.

 

겨울밤은 어둠과 조금 남은 따뜻한 공기를 잡아먹고 있었다. 은우와 엄마는 말없이 학원에서 점점 멀어지며 아파트 단지로 넘어갔다. 수학 학원은 단지 내 상가에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밤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엄마와 은우의 거리 역시 가깝지 않았다. 은우는 말이 없었다. 엄마도 말이 없었다. 은우는 엄마가 어떤 말도 걸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은우가 온종일 있었던 곳을 묻지 않았다. 대답할 마음이 없는 은우의 눈빛을 학원에서부터 읽었기 때문이었다. 둘 다 이 침묵을 이대로 받아들였다. 가까운 거리를 오래 걸어온 두 걸음,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야 엄마가 침묵을 열었다. 

“밥은?”

“안 먹었어. 근데 안 먹어도 돼.”

“무슨 말이야?”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괜찮아.”

“······ .”

엄마는 침묵을 다시 닫았다. 그리고 나란히 승강기를 타고 집으로 올라왔다. 방으로 들어와 은우는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는 은우를 따라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밥을 먹는다고? 안 먹는다고?”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된다고.”

“배 안 고파?”

“고파.”

“그럼 먹으면 되지. 분명히 말해야지 네 생각을.”

“엄마 말이 중요하니까. 엄마가 말하면 그런 거 같으니까. 밥을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배가 고프다가 안 고프다가.”

“······ .”

“먹을게.”

엄마는 말이 없었다. 엄마는 창밖을 바라봤다. 밤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짙게 파고들었다. 서쪽 창문 혼자 어둠과 밤을 삼키고 있었다.

“은우야, 엄마도 너처럼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으니까 솔직히 말해 줄 수 있어? 오늘 어디 갔는지?”

“······ .”

“병원에. 학원가는 길에 현우를 만났어. 병진이가 응급실에 있다 입원 했다고, 나 좀 불러 달라고 그랬대. 현우에게···”

“병진이? 많이 다쳤어?”

“많이는 안 다쳤어.”

“그럼, 병원 갔다고 말하면 되지.”

“원장은 학원 빠지면 어떤 말도 안 믿어. 그냥 학원 오기 싫은 거야.” 

“그럼, 엄마 있을 때 말하지. 친구 문병 갔다고.”

“내가 병원 가는 걸 아무도 본 사람이 없잖아. 내가 병원 간 것도 아니고 안 간 것도 아니고.”

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임 /구글 나노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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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의 방 주인은 침묵이었다. 시간 속에서 침묵이 자라고 있었다. 조용한 실내가 꼼짝없이 계속되다 삐걱, 문소리와 함께 엄마가 은우 방을 나왔다. 엄마는 어두운 주방 스위치를 켰다. 쌀을 씻고 은우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였다. 벽시계 바늘이 방금 밤 10시를 넘겼다.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 밥을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은우야! 밥 먹자.”

은우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우리 배고프니까 밥 먹자.”

은우는 숟가락을 들었다. 수저 가득 미역을 담아 입으로 집어넣었다. 크게 한 입,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집 안 침묵을 삼켰다. 몹시 고픈 배가, 배가 고픈 탓을 하는지 숟가락의 속도를 부추겼다. 더불어 목구멍으로 침묵이 넘어가는 소리도 덩달아 빨라졌다.

여성경제신문 양선주 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zoo-mouse@hanmail.net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양선주 시인·작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문단에 데뷔해 시집 <사팔뜨기> 를 출간했다. 건강 문제로 인한 긴 공백기 끝에 2025년 시집 <열렬한 심혈관> , 산문집 <시는 내 곁으로 와 눕고> (공저)를 펴내며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소설미학> 에서 동화, <월간문학> 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적 역량을 펼치고 있으며, 동화책과 동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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