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중동이 K-방산의 새로운 주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방산업체들의 납기 지연이 장기화되고, 각국의 무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 공백이 발생하면서다.
반면 막대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자주국방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은 신속한 전력 보강과 장기 산업 협력을 동시에 모색하고 있다.
왜 지금, K-방산은 중동을 향하고 있는가.
중동 시장은 단순한 '대체 시장'이 아니다.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계약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며 산업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완제품 수출 중심의 기존 모델로는 접근이 어려운 구조다. 동시에 유지·보수·정비(MRO)와 성능개량을 포함한 전 수명주기(LCC) 기반 수익 모델을 구축할 경우, 향후 20~30년간 안정적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이기도 하다.
<뉴스락>뉴스락>은 중동 방산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K-방산의 대응 방향을 짚는다. 중동이 일시적 '수출 호황'의 무대에 그칠지, 아니면 장기 플랫폼 경쟁의 출발점이 될지 그 가능성을 진단한다.
사우디 리야드에서 시험대 오른 K-방산
한국의 중동 향 방산 수출은 지난 5년간 약 3배로 증가했다. 2019년 약 2억4,100만 달러 수준에서 2024년 약 7억4,700만 달러로 확대되며, 중동이 주요 수출처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동을 연간40조 원 규모의 방산 시장으로 평가하며, ‘조 단위’ 수주도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이에 국가대표 방산기업들은 최근 개최된 중동의 방산 전시회에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지며 능력을 과시했다.
이번 전시는 사우디의 산업 자립 전략과 맞물려 현지 생산·기술 이전을 전제로 한 협력 모델을 모색하는 자리로 평가된다.
World Defense Show 2026(WDS 2026)가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가운데,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오션 등은 항공·미사일·해양·우주를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번 전시는 단순 제품 홍보 차원을 넘어 K-방산이 '단순 수출'에서 '체계 통합형 패키지 수출'로 전략적 진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 자리로 보인다.
KAI는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와 경공격기 FA-50을 중심으로, 초소형 SAR 위성과 유·무인 복합체계(MUM-T)를 결합한 '항공-우주 패키지'를 제안했다. 전투 플랫폼과 우주 기반 정찰자산을 연계한 네트워크 중심전 역량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KAI는 이번 전시 기간 중 사우디 투자부와 면담을 갖고 항공·우주 및 위성 분야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사우디의 산업 현지화 정책과 맞물려 공동개발 및 생산 협력 여지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향후 사업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제기된다.
한화 방산 계열 3사는 인공지능(AI) 기반 통합 방산 역량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화시스템은 다목적 레이다(MMR)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배회형 정밀유도무기(L-PGW)를 공개했다.
한화오션은 위성·드론 정보를 AI로 통합 분석하는 차세대 함정 모델을 소개하며 육·해·공·우주를 잇는 통합 지휘체계 구상을 제시했다.
LIG넥스원은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II를 중심으로 장거리 요격체계 L-SAM, 휴대용 대공무기 신궁을 묶은 '다층 방공망' 개념을 강조했다. 여기에 전자전 및 레이다 기술을 결합해 탐지-지휘-요격이 연결된 완결형 방어 솔루션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중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K-방산의 전략 전환과 맞물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드론과 미사일 위협이 상시화되면서 단일 무기가 아닌 통합 방어체계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고, 대형 프로젝트 중심의 계약 구조와 장기 군수지원(MRO) 시장 역시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특히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산업 현지화와 기술 이전을 요구하면서, 단순 판매를 넘어 공동개발·현지 생산 모델이 유력한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전시 효과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방산업체와의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며, 기술 이전 범위와 현지 생산 비율을 둘러싼 협상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럽 병목·중동 불안…공급 공백이 만든 기회
최근 중동은 유럽 방산업계의 공급 제약, 이란 변수, 드론·미사일 확산, 홍해 항로 불안 등 복합적인 지정학적 리스크에 직면했다.
단발성 무기 도입이 아닌 탐지-지휘-요격을 아우르는 통합 방어체계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배경이다.
우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유럽 방산업체의 생산라인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중동 국가들은 납기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동유럽 지원 물량이 우선 배정되며 새로운 공급 파트너 모색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지난 1월 독일 방산기업 KNDS(레오파르트2 전차 제조사)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독일과 노르웨이가 주문한 레오파르트 2A8의 초도 물량이 2025년 11월에야 출고됐으며, 체코·리투아니아 등이 주문한 물량은 2028년~2030년에나 인도가 가능하다고 공식 확인했다. 신규 주문 기준 인도까지 수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구조다.
이러한 공급 공백 속에 역내 안보 위협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24일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간한 '밀리터리 밸런스 2026'은 "저비용 드론과 미사일의 상시화는 중동의 안보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단일 방공망의 한계를 지적하며, 탐지부터 요격 까지 이어지는 '통합 방어 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해상 긴장 역시 공중 위협과 맞물리며 통합 감시·지휘체계의 전략적 가치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개혁 프로그램인 '사우디 비전 2030'을 통해 방산 자립도 제고와 기술 이전을 핵심 전략으로 추진중이다.
지난 2016년 발표된 이 계획은 무기 도입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현지 생산 비율을 50% 이상으로 이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외국 방산 기업과의 기술 이전 및 합작 생산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결국 유럽의 생산 병목 중동의 안보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압도적인 납기 준수 능력과 체계 통합 역량을 갖춘 한국 방산업계가 단순한 대안을 넘어 전략적 파트너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구기보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중동 진출이 기회인 동시에 전략적 관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구 교수는 <뉴스락>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중동 내 일부 국가는 미국과의 관계가 복잡한 만큼, 한국 무기가 특정 지역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장치와 함께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며 "현지 공장 설립이 반미 행보로 비춰지지 않도록 외교적 조율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 생산 확대에 대해서는 수출 통계상 단기 감소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수주 경쟁력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완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면 수출액은 크게 잡히지만, 중동 국가들은 산업 자립과 기술 축적을 요구하고 있어 현지 생산 모델이 수주에는 더 유리하다"며 "핵심 부품은 한국에서 공급하고 현지에서는 조립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부품·정비 수요가 지속 발생해 장기적 수출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제2의 중동 붐’ 될 지 전략적 선택 기로에 서
장원준 전북대학교 첨단방산학과 교수와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은 중동 시장의 본질을 ‘완제품 판매’가 아닌 ‘표준 선점 경쟁’으로 규정했다.
전투기·미사일·지상체계가 개별 플랫폼으로 움직이던 시대를 넘어, 지휘통제(C4ISR)·데이터 링크·전장관리 소프트웨어가 모든 체계를 연결하는 'System of Systems'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채 회장은 <뉴스락> 과의 인터뷰 뉴스락>에서 "하드웨어는 교체될 수 있지만, 지휘통제 표준과 데이터 아키텍처가 자리 잡으면 그 생태계 안에서 확장될 수밖에 없다"며 "초기 도입 체계의 표준이 곧 후속 도입의 기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20~30년간의 '록인(Lock-in)' 효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장 교수 역시 같은 맥락에서 "MRO 체계, 군수정보시스템, 핵심 소프트웨어를 한국이 설계·주도하면 단발성 매출이 장기 운영 수익 구조로 전환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동의 혹서·모래·염분 등 가혹한 운용 환경은 가동률 유지가 곧 전력이라는 점에서, 성능개량·소프트웨어 업데이트·예비부품 교체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양측 모두 AI 기반 무기체계와 유·무인 복합체계(MUM-T)의 경우 데이터 축적이 곧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중동에서 축적되는 센서·비행·전자전 환경 데이터는 알고리즘 고도화와 고장예지(PHM), 자율임무 체계 정밀화에 실질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전장 운영의 언어를 누가 설계하느냐"가 미래 방산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데 두 전문가는 의견을 같이했다.
중동 진출이 한미 동맹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두 전문가는 '기회와 리스크가 공존하는 전략 변수'라고 진단했다.
채 회장은 "한국이 가격·납기·특정 플랫폼에서 보완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동맹의 부담을 분담하는 구조로 해석될 수 있다"며 "경쟁자가 아니라 보완형 파트너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ITAR 등 미국의 수출통제 규제와 직접 경쟁 품목에서는 사전 조율과 전략적 투명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 역시 지난 10여년간 중동 진출이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 속에서 이뤄져 왔다고 짚으며 "중동 방산시장에서 미국의 비중은 여전히 절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 틈새를 공략하는 방식은 유효하지만, 일부 품목에서 선의의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관리 방식'이다.
공동개발·공동마케팅·기술 분담 구조를 제도화하고, 동맹 틀 안에서 역할을 명확히 설정한다면 한국의 안보 파트너십 가치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제2의 중동 붐'을 구조적 성과로 만들기 위한 과제로 두 전문가는 공통적으로 금융과 제도, 그리고 상설화된 원팀 체계를 꼽았다.
채 회장은 "방산 대형 사업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패키지 경쟁"이라며 "정책금융과 장기 저리 금융, 정부 보증 구조가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이 곧 전력"이라며 선진국 수준의 수출금융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 또한 프랑스·이탈리아 등의 대형 수출 사례를 언급하며,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한 공격적 금융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지원 규모와 이자율이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짚었다.
수출통제 제도 정비도 공통 과제로 제시됐다. 기술 이전·공동개발이 결합된 사업일수록 인허가 절차의 예측 가능성과 신속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산업통상자원부·전략물자관리원 등으로 분산된 기술 검토 기능을 원스톱 통합 플랫폼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두 전문가는 정부-기업-군이 결합된 '원팀' 협상 구조의 상설화를 주문했다.
외교·안보·산업협력·교육훈련·MRO까지 아우르는 종합 패키지를 설계하지 못하면 패키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진단을 종합하면, 중동은 단순 수출 시장이 아니라 한국 방산이 '플랫폼 설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험대다.
단기 계약 규모가 아니라 20~30년 후까지 이어질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제2의 중동 붐'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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