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이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공간력(空間力)’ 개념의 출발점입니다. 단순히 낡은 건물을 보수하거나 도색하는 수준을 넘어, 장병이 생활하고 훈련하고 소통하는 모든 공간을 전략적으로 설계해 전투력과 조직문화를 함께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입니다.
◇육군 “공간은 과소평가된 전력 요소”
육군의 공간력 정의는 이렇습니다. 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는 공간의 매력이 곧 힘이고, 공간 개선을 통해 장병을 모으고 머물게 해 소통과 변화, 단결을 촉진하는 역량입니다. 환경미화가 아니라 ‘전투력과 직결된 인프라 혁신’이라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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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은 공간을 ‘가장 핵심적이지만 가장 과소평가된 요소’라고 판단했습니다. 좁고 어두운 공간은 행동을 위축시키고 사기를 저하시키지만, 반대로 밝고 개방적인 공간은 협력과 집중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군에서 공간의 의미는 더욱 직접적이라는 설명입니다. 좋은 생활·교육·훈련 환경이 교육 몰입도와 무기 숙련도를 높이고, 사기와 단결력을 강화해 궁극적으로 전투력 상승으로 이어진다는게 육군의 판단입니다. 공간은 복지 차원이 아니라 ‘전력 요소’라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공간은 구조를 바꾸고, 구조는 문화를 바꾼다는 명제는 일부 증명됩니다. 영국 킹스데일 고등학교 사례는 공간 개선 이후 무단결석 감소, 시험 합격률 증가, 우발적 사고 90% 감소라는 수치를 제시했습니다. 민간은 이미 공간을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공간혁신을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학교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도 매년 공간혁신 우수사례집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공간력 사업, 2036년까지 전 대대 확대
이에 따라 육군도 수도방위사령부와 미사일전략사령부, 36사단 등에서 일부 공간력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기존 화장실에 세탁기를 두던 것에서 탈피해 세탁 공간을 분리시키고 이를 민간 세탁시설 수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활용도 낮은 다용도실을 개방형 소통 공간으로 전환하는가 하면, 도서관·체력단련실·의무실의 조도·동선·가구 배치 개선을 통해 이용률과 체감 만족도를 향상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4개 대대의 사고발생 건수가 기존 110건에서 59건으로 46% 감소했고, 인력획득도 기존 10명 수준에서 25명으로 증가했다는게 육군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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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찾은 육군 공간력 혁신 시범부대 중 하나인 11기갑사단 예하 철마대대는 개인 휴식 및 취침 공간과 전투 장구 착용 등의 임무 공간을 분리해 완전히 다른 병영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TV와 공용 의자·테이블, 전투장구 비치 장소와 침실을 분리시킨 것입니다. 또 개인 침상 마다 버티컬을 설치해 독립 공간을 보장하는가 하면, 병영생활관 조도를 높여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부대 행정실 역시 민간 회사를 수준의 사무실 배치와 조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육군은 2036년 완료를 목표로 공간력 혁신 10개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6년에는 215억4000만 원을 투입해 7개 시범부대를 외부 전문업체 주도로 개선하고 있습니다. 설계 단계부터 해당 부대 장병이 참여하는 ‘사용자 중심’ 방식입니다. 이후 2027년부터 2036년까지 매년 30개 부대씩, 총 797개 대대급 부대를 국방중기계획에 반영해 확대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우려와 괴리, 투자 우선순위 논란도
그러나 일부 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공간력 취지는 이해하지만, 예하부대에서는 없는 예산을 끌어다 쓰거나 간부들이 직접 도배·용접·페인트 작업까지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육군참모총장의 지휘 방침을 따르느라 일부 지휘관들이 예산을 먼저 확보하기보다 자체적으로 공사를 서두르거나, 간부들이 사실상 ‘인테리어 인력’처럼 동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군 측은 “공간력 사업은 해당 부대 요구사항을 종합해 외부 전문업체를 통해 설계·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명합니다. 지휘 의도와 현장 집행 사이의 괴리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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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상급 지침이 내려오면 현장에서는 이를 지금 당장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산이 본격 반영되기 전 단계에서 자체 개선을 서두르거나, 보여주기식 정비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문업체 시공과 예산 반영을 전제로 하는 제도적 사업인지, 아니면 부대별 자율적 환경정비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는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재확인과 현장 점검이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빠듯한 국방 예산 상황에서 공간 개선에 재원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력 증강, 장비 현대화, 훈련 강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 시점에 ‘공간’에 예산을 쓰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 제기입니다.
육군은 공간 개선이 장비 투자와 대립되는 항목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장비 숙련도와 훈련 몰입도, 사고 예방은 결국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논리입니다. 안전한 체력단련 환경은 부상 감소로 이어지고, 쾌적한 교육 환경은 숙련도 향상으로 연결되며, 안정된 생활 환경은 간부 이탈률 감소와 인력 확보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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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육군, 무기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공간력 사업이 전투력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정량적 지표와 경험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는다면, 예산 낭비라는 비판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고 감소, 인력획득 증가, 민원 감소, 부대 만족도 등이 수치로 입증된다면 투자 논리는 힘을 얻게 됩니다.
결국 제기되는 문제점의 핵심은 공간력 사업은 전투력과의 직접적 연계성, 성과 검증 체계, 본연 임무에 부담을 주지 않는 집행 방식 등에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육군이 강조하는 공간력의 취지가 현장에서 전투력 향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비용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도 육군의 이번 실험은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공간, 머물고 싶은 공간, 소통이 자연스러운 공간은 사기와 신뢰를 만들고 신뢰는 전투력으로 환산될 것이라는 철학적 고민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육군은 무기에서만 나오지 않고, 결국은 사람을 품는 공간에서 시작된다는 명제가 어떻게 증명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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