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으로 고용시장에 대대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무직, 전문직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가 강세를 보였던 과거와 달리 현장 업무 위주의 이른바 '블루칼라'가 대세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이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 기인한 일자리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파장이 국제사회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블루칼라 직종의 강세는 일 보단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청년세대 가치관과 인공지능 중심의 산업 환경 변화 등에 힘입어 앞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극심한 구인난에 미국·일본 블루칼라 처우 껑충…화이트칼라 연봉 앞지른 직업 대거 등장
일본에서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연봉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심한 구인난 속에서 상대적으로 인력부족이 심각한 블루칼라 직종의 연봉 상승률이 더 컸기 때문이다. 리크루트웍스연구소가 일본 후생노동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145개 직종의 '2024년 비관리직 연봉'(잔업 수당·상여 포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자동차 정비사 평균 연봉은 480만4100엔(약 4410만원)으로 일반 사무직 평균 연봉(468만엔, 약 4298만원)을 넘어섰다. 목수 등 건설 현장직 연봉 역시 492만1300엔(약 4521만원)으로 사무직과 맞먹는 수준을 보였다.
연봉 상승률 순위 상위권을 차지한 직종 역시 대부분 '블루칼라' 계통이었다. 간병 및 승합 택시를 포함한 택시 운전기사(38.3%)가 1위를 차지했고 이어 치과의사(38%), 검침원 및 요금수금원 등 옥외 서비스직(36.3%), 목수 및 비계공을 포함한 건설 구조직(31.7%) 등의 순이었다. 이러한 높은 연봉 상승률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계 전체의 구인난 속에서 인력 부족이 심한 직종일수록 임금을 높게 책정하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실제로 목수·비계공 직종의 구인배율(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은 2024년 기준 일본의 평균 구인배율(1.22배)의 8배가 넘는 9.38배를 기록했다.
미국에선 일본 보다 이른 시기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 급여 정보 관리업체 ADP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 건설 분야 신규 채용자의 중간 임금(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 임금)은 4만8089달러(약 6500만원)에 달했다. 회계사, IT전문가 등 전문 서비스 분야 신규 채용자의 중간 임금(3만9520달러) 대비 9000달러 가량 높은 수준이다. 평균 연봉 10만달러(약 1억3400만원) 이상의 블루칼라 직종도 빠르게 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발전소 엔지니어, 방사선 치료사, 엘리베이터 설치·수리공 등의 평균 연봉은 10만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미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2024년 초 이후 월간 구인 공고수는 신규 채용 건수보다 평균 220만 건 이상 많았다. 또 올해 1월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13만명 증가하며 시장전망치(5만5000명)를 크게 웃돌았다. 시간 당 평균임금도 전월 대비 0.4% 올랐다. 평균임금이 올랐다는 의미는 그만큼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NYT, WSJ 등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선 폐업하는 상점이 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일 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폐업하는 상점이 적지 않다.
블루칼라에 열광하는 청년들 "딱 정해진 시간만큼 몸 쓰고 퇴근, AI시대에도 철밥통"
눈에 띄게 높아진 블루칼라 처우는 취업을 앞둔 청년세대의 직업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블루칼라를 기피하고 화이트칼라를 선호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전문 직업 교육 프로그램 중심의 2년제 전문대(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하는 학생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전국대학생정보연구센터(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직업 교육 중심 전문대 등록 학생 수는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2018년 이후 최고치다. 특히 블루칼라 직종과 관련 깊은 학과의 학생 수 증가가 두드러졌다. 건설 관련 학과의 상승률은 23%, 난방·환기·공조(HVAC)·차량정비 학과의 상승률은 7% 등이었다.
영국의 상황도 비슷했다. 로이터통신의 지난해 말 보도에 따르면 고등교육기관인 유나이티드 칼리지 그룹(United Colleges Group)에선 최근 3년간 공학·건설·빌트 환경 과정 등록률이 전년 대비 9.6% 늘었다. 반면 대학 학부 등록률은 소폭 감소했다. 최근 영국에서도 블루칼라 직종의 임금 상승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엔지니어링 및 제조 부문 종사자의 연간 수입은 1년 새 약 9.5% 증가했다. 이 밖에도 현장 감독자, 산업 엔지니어, 위험 측량사 등의 직종도 8% 이상의 높은 임금 인상률을 기록했다.
한국 청년들의 인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난해 10월 진학사 캐치가 Z세대(1990년대 후반 이후 출생) 구직자 16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블루칼라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63%에 달했다. 반면 부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7%에 그쳤다. 이러한 인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있다. 지난 2023년 현대자동차 생산직 신입 공개 채용 당시 400명 채용에 무려 12만명의 지원자가 몰려 300대 1 수준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또 비슷한 시기 진행된 기아 생산직 공개 채용은 500대 1 수준의 경쟁률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블루칼라 직종의 강세와 구직자들의 선호 현상은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일 보단 개인의 삶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청년세대 가치관과 인공지능 중심의 산업 환경 변화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전경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요즘 젊은세대는 '워라밸 보장(66.5%)'을 직장 선호의 최우선 조건으로 여겼다. 또 정년보장 등의 안정성을 꼽은 응답자도 16.3%에 달했다. 이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직업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는 화이트칼라 직종 기피와 관련 깊은 대목으로 분석된다. 레벨리오랩스, 사람인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미국의 화이트칼라 신규 채용 공고는 1년 전에 비해 12.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역시 신입 개발자 구인 공고 건수는 전년 대비 18.9%나 줄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화이트칼라가 사회적 성공의 척도였으나 이제는 실질적인 보상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이 고용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며 "특히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사무·전문직의 업무 대체 가능성이 커진 반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블루칼라 직종은 여전히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평가받으며 직업적 안정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산업 구조의 재편과 맞물려 있다"며 "앞으로 블루칼라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함께 처우 개선이 지속된다면 청년들의 직업 선택 기준으 과거와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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