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사망한 핵심 폭로자 주프레의 '노바디스 걸' 국내 출간
英 앤드루 왕자 성학대 정황 등 진술해 출간 당시 파장 일으켜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2019년 수감 중 숨진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은 사망 7년이 돼 가는 지금도 지구촌을 거세게 뒤흔들고 있다.
최근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 앤드루 전 왕자가 전격 체포됐다 풀려나 충격을 준 가운데, 앤드루의 성학대 정황 등을 포함해 엡스타인의 성착취를 폭로했던 피해자의 회고록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노바디스 걸'(원제 'Nobody's Girl')은 엡스타인 사건의 핵심 증인이던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가 지난해 4월 숨지고 6개월 후에 출간된 회고록이다.
회고록에서 주프레는 앤드루 전 왕자와 세 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졌다며 정황을 자세히 묘사하는 등 자신이 당한 성착취를 기록해 파장을 불러왔다.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난 주프레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를 비롯한 여러 남성으로부터 성착취를 당했다.
학대로 점철된 유년기를 보낸 상처 많은 주프레는 엡스타인과 공범 길레인 맥스웰에게 쉬운 먹잇감이 됐다. 오랫동안 "내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 도구로 취급받고 상대의 비위를 맞추며 간신히 생존을 이어온" 그를 엡스타인과 맥스웰은 꿰뚫어 봤다.
주프레는 10대 때 엡스타인의 안마사로 고용된 뒤 3년간 엡스타인뿐 아니라 그에게 초청된 여러 주요 인사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엡스타인과 앤드루, 주프레 외에도 어린 소녀 8명이 함께 했던 난교 파티 이후 채 18살이 되지 않았던 주프레는 날카로운 아랫배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 가는 등 끊임없는 착취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
3년 만에 엡스타인의 손아귀에서 탈출했지만, 그가 남긴 영구적인 상처 탓에 삶은 순탄치 않았다.
이 책에는 거듭된 성착취의 굴레에서 생존한 주프레가 침묵을 깨고 투사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진솔하게 담겼다. 사랑스러운 딸의 어머니가 된 주프레는 한 명의 소녀라도 더 구하겠다며 2011년부터 엡스타인과 맥스웰의 악행을 공개적으로 폭로하기 시작했다.
영국 왕실까지 겨냥한 폭로로 '창녀'라는 모욕과 살해 협박에도 시달렸으나, 그의 용기 있는 폭로는 엡스타인이라는 괴물의 정체를 더 낱낱이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
엡스타인은 감옥에서 목숨을 끊고, 공범 맥스웰도 수감됐지만, 엡스타인과 같은 괴물은 언제든 또 나올 수 있다고 주프레는 경고했다.
"엡스타인은 사라졌지만, 그가 마음 놓고 괴물이 될 수 있었던 토양은 여전히 비옥하다. (중략) 소수의 상징적인 사건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가 치유된 것은 아니다."
성착취 피해 생존자에서 투사로 변신했던 주프레가 학대 피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지난해 4월 호주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주프레의 우울한 경고와 맞물려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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