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서울 강남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린 ‘한지스펙트럼’을 관람하며 한동안 작품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한지는 나에게도 낯선 재료가 아니다. 대학교에서 배운 시간들과 지금도 한지 위에 아크릴 채색을 올리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나의 현재까지, 한지는 늘 내 작업의 바탕이자 숨결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한지를 전혀 다른 스펙트럼으로 펼쳐 보이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종이’라는 물질이 지닌 공기의 밀도였다. 빛을 머금고, 통과시키고, 다시 반사하는 한지의 표면은 단순히 평면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공간이 되었고, 구조가 되었고, 때로는 숨 쉬는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제작해 온 안치용 한지장의 작업에서는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종이 한 장에 스며든 물과 섬유,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오랜 축적 위에 놓여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앞에서 ‘기술’보다 ‘태도’를 생각했다. 한지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재료를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시간을 다루는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박송희 작가의 작품은 한지를 보다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화면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한지 위에 스며드는 색과 결은 내가 익숙하게 다루는 아크릴 채색과도 어딘가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 질감은 더 부드럽고, 더 천천히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내 작업 속 캐릭터 ‘몽다’와 ‘거복이’를 떠올렸다. 한지 위에 그려지는 나의 판다 곰과 거북이는 언제나 밝고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때로는 너무 또렷하고 분명하게만 전달되려 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지가 가진 여백과 숨 고르는 시간, 번짐과 스밈의 미학을 조금 더 신뢰해도 되지 않을까.
소동호 작가의 설치 작업 앞에서는 특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지가 구조물이 되고, 공간을 가르는 면이 되며,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평소 한지를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바탕’으로 인식해 온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전시를 통해 한지는 스스로가 주체가 될 수 있는 재료라는 사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종이는 받쳐주는 존재가 아닌 그 자체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나의 작업 역시 캐릭터나 이야기 이전에 한지라는 물질 자체의 목소리를 더 듣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전시를 보고 나오며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한지를 쓰는가?” 전통이어서일까,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단지 배워왔기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지는 나에게 ‘따뜻함’을 주는 재료이기 때문이라는 답에 닿았다. 만졌을 때의 촉감, 물을 머금었을 때의 숨결, 색이 스며들 때의 기다림. 그것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와는 다른 속도를 지닌다. 나는 그 느린 속도를 사랑한다.
‘한지스펙트럼’은 한지를 새롭게 보여준 전시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재료에 대한 존중, 전통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동시대적 확장에 대한 용기. 앞으로의 작업에서 나는 한지를 더 깊이 바라보고 싶다. 단지 그림을 그리는 바탕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동반자로서 말이다. 한지 위에 피어나는 몽다의 미소와 거복이의 느린 걸음이, 조금 더 숨 쉬고, 조금 더 빛을 머금고, 조금 더 여백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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