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땅콩, 술상 위 고소한 역사를 품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땅콩, 술상 위 고소한 역사를 품다

연합뉴스 2026-02-27 09:58:27 신고

3줄요약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땅콩 땅콩

[신종근 제작 이미지]

우리가 흔히 '심심풀이'라 부르는 땅콩은 맥주 한 잔에 곁들이는 평범한 안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기엔, 이 작은 알갱이가 한반도에 뿌리내린 여정은 역동적이고 흥미롭다. 남미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태어난 땅콩이 어떻게 우리네 술상 위까지 올라오게 됐는지, 그 고소한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 남미에서 한반도로, 낙화생의 첫걸음

땅콩의 고향은 브라질과 페루를 중심으로 한 남미 대륙이다. 원산지는 남미 안데스산맥 일대, 약 3천500년 전 남미의 인디오가 재배하기 시작한 작물이다. '땅속에서 열리는 콩'이라는 독특한 생태 덕에 스페인어로는 'mani'(땅속 열매), 포르투갈어로는 'amendoim'이라 불렸다.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퍼진 땅콩은 명나라 말엽 중국에 들어갔고, 조선 정조 시기(18세기 후반) 청나라 사신을 통해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이국적인 작물은 당시 실학자 이덕무의 저서나 정약용의 기록을 보면, 중국(청나라)을 다녀온 사신이 가져온 '낙화생'(落花生)에 대한 묘사에 등장한다.

이덕무의 '우연록'과 서유문의 '무오연행록'에 따르면, 청나라에서 낙화생이라 불리던 땅콩은 꽃이 지고 줄기가 땅속으로 파고들어 열매를 맺는 신기한 모양 때문에 관상용으로 여겨졌다. 정조 2년(1778년) 이덕무가 종자를 들여왔으나 재배에 실패했고, 순조 30년(1803년) 조장이 성공리에 길러내며 본격 보급됐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무렵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구황작물로 자리 잡아 굶주린 백성의 배를 채웠다. 이후 전국적인 구황작물로 자리 잡았다.

굶주린 백성의 배를 채워주던 투박한 작물이 현대에 이르러 여유와 풍류를 빚어내는 화려한 '술'로 진화한 것은 꽤 매력적인 반전이다.

비록 단원 김홍도나 혜원의 풍속화 속 왁자지껄한 주막 풍경에는 등장하지 않았을지언정, 훗날 화선지를 펼쳐놓고 시서화를 즐기던 옛 선비들의 소박한 술상 한편에 놓인 볶은 땅콩은 한 잔의 술과 예술적 정취를 이어주는 훌륭한 매개체가 됐을 것이다.

IMF 경제위기 시절 '열차 안에서 심심풀이로 팔던 땅콩'이라는 도시 전설처럼, 땅콩은 소박한 삶의 동반자였다. 지방질 50%, 단백질 25%, 비타민 B군과 E가 풍부한 영양 덕에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간 해독 작용을 돕는 레시틴과 알코올 분해를 촉진하는 성분은 조상들의 지혜를 증명한다. 옛 문헌에서 '장생과'(長生果)라 불린 것도 이런 효능 때문이다.

◇ 안주에서 술로 변신하다

땅콩은 안주를 넘어 술로 승화했다. 땅콩은 지방질이 풍부해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술로 빚었을 때의 풍미는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땅콩 술은 양조장의 개성에 따라 그 결이 제각각이다. 전통 누룩과 쌀, 땅콩을 발효시켜 빚은 막걸리는 고소함과 묵직한 바디감으로 사랑받는다. 제주 우도의 화산토양에서 자란 우도땅콩은 단백질 함량이 높아 술맛을 더 깊게 만든다.

제주 낙화곡주의 '우도땅콩막걸리'는 현지 토종 땅콩을 20% 이상 넣어 고소함을 구현했고, 세종 조은술의 동명 제품은 대중적 맛으로 전국구가 됐다. 배혜정도가의 '호땅'은 땅콩과 호두로 풍미를 더했고, 우리술의 '톡쏘는 땅콩동동'은 청량감으로 차별화했다. 충북 천수양조, 충남 장인정신(한살림), 전남 새순천양조, 전북 천년주가 등 전국 20여 양조장이 각자의 비법으로 땅콩을 풀어낸다.

낙화곡주의 땅콩막걸리, 조은술 세종의 우도땅콩막걸리 낙화곡주의 땅콩막걸리, 조은술 세종의 우도땅콩막걸리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우도와 세종이 전통적 특색을 살렸다면 배혜정도가와 우리술은 이색적 변주를 시도했다. 땅콩에 호두를 더해 풍미를 극대화하거나, 우리술의 '톡쏘는 땅콩동동'처럼 청량감을 강조한 제품도 인기가 많다.

배혜정도가 호땅, 우리술의 톡쏘는 땅콩동동 배혜정도가 호땅, 우리술의 톡쏘는 땅콩동동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숨은 강자라 할 수 있는 땅콩술도 있다. 충북의 천수양조와 고려주조, 충남의 장인정신(한살림)이나 전남의 새순천양조영농조합, 전북의 천년주가 등 전국 각지의 양조장들이 각자의 비법으로 땅콩의 고소함을 술 속에 녹여내고 있다.

다양한 땅콩술 다양한 땅콩술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시중에서 만나는 '땅콩 막걸리' 병 뒷면의 식품 유형을 들여다보면, '탁주(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표기된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 주세법상 '탁주'로 인정받으려면 정해진 원료 외에 향료나 색소를 넣을 수 없다. 땅콩 특유의 고소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천연 향료를 추가하거나, 법적 기준을 벗어나는 배합 비율을 적용하는 순간 탁주의 지위를 잃고 기타주류로 분류되는 것이다.

그저 이름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세금의 무게도 확연히 달라진다. 탁주는 술의 용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의 혜택을 받아 1리터당 44.4원의 아주 낮은 주세만 부담한다.

반면, 기타주류로 분류되면 술의 제조원가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가 적용돼 출고가의 무려 30%라는 높은 세율을 감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양조장들이 무거운 세금을 감수하며 기타주류를 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맛'이다. '기타주류'라는 꼬리표는 전통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깊고 진한 땅콩의 풍미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양조장들이 선택한 치열한 고집이자 '맛있는 일탈'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맥주에는 땅콩'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땅콩의 풍부한 단백질과 비타민 B군은 간의 해독 작용을 돕고 알코올 분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조상이 땅콩을 맛으로만 술 곁에 둔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는 지혜로운 안주로 선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옛 기록에 따르면 땅콩은 '장생과'(長生果)라 불리기도 했다. 먹으면 오래 산다는 뜻이다. 고소한 땅콩주 한 잔을 기울이며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던 선조들의 여유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때이다.

여기에 미각을 자극하는 안주 페어링을 곁들인다면 그 풍류는 배가된다. 땅콩 막걸리 특유의 달콤하고 묵직한 고소함에는 매콤 새콤하게 무쳐낸 도토리묵이나, 불향을 입힌 매콤한 낙지볶음이 제격이다. 입안에 감도는 땅콩의 진한 풍미가 매운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완벽한 미식의 조화를 이뤄낸다

먼바다를 건너온 이방의 씨앗이 이제는 우리 강산의 흙과 만나 가장 한국적인 술로 변모했다. 오늘 밤, 투박한 사발에 담긴 땅콩 막걸리 한 잔과 매콤한 안주를 마주하고 앉아 그 속에 담긴 긴 시간을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 씹을수록 고소한 땅콩처럼, 우리네 삶의 이야기와 예술적 영감도 한층 깊어질 것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