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칭찬 하면서 나는 비난하는 이유
언니가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오면 온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엄마는 언니를 끌어안고 “역시 내 딸”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당신이 90점짜리 시험지를 내밀면, 엄마의 입꼬리는 차갑게 내려갔다. “너는 왜 언니 반만큼도 못 하니?”
같은 뱃속에서 나와 같은 밥을 먹고 자랐건만, 우리 집의 저울은 언제나 한쪽으로 기괴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언니는 무엇을 해도 용서받는 ‘우리 집의 자랑’이었고, 당신은 숨만 쉬어도 지적을 받는 ‘우리 집의 골칫거리’였다.
가장 서러운 것은 억울함이었다. 언니가 잘못한 일도 교묘하게 당신의 탓으로 둔갑했고, 가족의 분위기가 싸늘해질 때면 모든 화살이 당신을 향했다. 당신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따뜻한 울타리 대신, 보이지 않는 가시덤불 속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가족의 모든 문제와 부정적인 감정을 뒤집어씌우는 자녀를 ‘희생양(Scapegoat)’이라고 부른다. 언니가 엄마의 허영심을 채워줄 ‘황금 아이(Golden Child)’의 왕관을 썼다면, 당신은 엄마의 수치심을 대신 짊어질 십자가를 강요받은 것이다.
당신이 언니보다 모자라서, 혹은 당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 비난받은 것이 아니다. 이 글은 그 지독한 편애와 차별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영혼을 지켜낸 당신의 생존기에 대한 헌사다.
감정 쓰레기통, 엄마의 그림자를 짊어진 아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겉보기엔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감당할 수 없는 열등감, 수치심, 분노가 가득하다. 이들은 자신의 흠집을 스스로 마주할 용기가 없기에, 그것을 투사(Projection)할 만만한 대상을 찾는다. 그 대상이 바로 희생양으로 지목된 당신이다.
엄마가 당신에게 퍼부었던 비난들—”너는 왜 그렇게 예민하니”,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이 모든 말들은 사실 엄마 자신을 향한 무의식적인 고백과 같다.
당신은 엄마의 어두운 내면, 즉 ‘그림자’를 대신 짊어지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가족 중 누군가 한 명을 ‘문제아’로 낙인찍음으로써, 엄마는 “우리 집 문제는 다 쟤 때문이야. 나는 완벽한 엄마야”라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아무리 착하게 굴고,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인정은 결코 얻을 수 없었다. 희생양의 역할은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오물을 받아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착해질수록 엄마는 투사할 대상을 잃게 되므로, 기를 쓰고 당신의 작은 흠집을 찾아내어 과장하고 비난해야만 했다.
엇갈린 자매, 이간질이 만든 비극
엄마는 당신과 언니 사이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이간질했다. “언니 반만 닮아봐라”라는 말로 당신에게는 깊은 수치심을, 언니에게는 비정상적인 우월감과 ‘엄마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삼각관계(Triangulation) 속에서 자매의 우애는 피어날 공간이 없었다. 언니는 황금 아이로서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깎아내리는 데 동참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엄마에게 혼날 때 방관하거나, 심지어 엄마와 합세해 당신을 비난했을 수도 있다.
당신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고통에 더해, 유일한 동년배 혈육인 언니에게도 배신당했다는 깊은 고립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언니 역시 건강한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니는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생존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꼭두각시였다. 진정한 악역은 자매를 서로 물어뜯게 만든 엄마의 통제욕구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배역을 맡았을 뿐, 같은 학대의 연극 무대에 올려진 피해자들이었다.
반항아라는 오명, 사실은 가장 건강한 외침
희생양으로 자란 딸들은 종종 가족 내에서 ‘반항아’, ‘별종’, ‘말썽꾸러기’로 불린다. 엄마의 부당한 대우에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가식적인 평화를 깨뜨리며 화를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가족 내에서 진실을 말하는 자(Truth Teller)는 주로 희생양이다. 당신이 반항했던 이유는 당신이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라, 엄마의 통제와 학대가 부당하다는 것을 직감할 만큼 내면의 ‘자아’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황금 아이인 언니가 엄마의 거짓된 세계에 순응하며 자아를 잃어갈 때, 당신은 비난과 매질을 견디면서도 “이건 틀렸어!”라고 외쳤다. 비록 그 과정에서 온갖 상처를 입었지만, 그 치열한 반항은 당신의 영혼이 완전히 잠식당하는 것을 막아준 가장 강력한 방패였다.
지금 당신의 마음에 남아있는 분노는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부당한 대우에 맞서 나를 지키고자 했던 생명력의 증거이자, 독립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아주 건강한 에너지다.
오물통을 뒤집어엎고 나의 길을 걷다
수십 년간 짊어졌던 억울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희생양의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다.
엄마가 씌워준 ‘못난 딸’, ‘문제아’라는 프레임은 애초에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병든 내면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이제 그 낡은 오물통을 과감히 뒤집어엎어라.
당신은 가족의 쓰레기통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엄마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뼈를 깎는 듯 아프겠지만, 그 슬픔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당신은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더 이상 언니와 자신을 비교하지 마라. 당신은 척박한 땅에서도 악착같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은, 믿을 수 없이 강인한 생존자다. 엄마의 차가운 눈빛과 비난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지 않고 버텨낸 당신의 힘을 스스로 인정하고 안아주길 바란다.
지금껏 가족의 그림자를 대신 짊어지느라 수고 많았다. 이제는 그 누구의 짐도 대신 져주지 말고, 오직 당신 자신의 찬란한 빛을 위해, 가볍고 당당하게 당신만의 길을 걸어가기를 응원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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