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세계 양대 핵 강국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까지 무너지면서 '브레이크 없는' 핵 경쟁시대가 열렸다. 양국이 2010년 체결한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연장 없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아무런 핵통제가 없는 상태가 됐다.
세계 핵무기의 90%가량을 보유한 미러 양국은 뉴스타트에 따라 배치 핵탄두 수를 각 1천550개, 배치 미사일과 폭격기 등 운반체 수를 각 700개 이하로 제한했다. 주기적으로 상호 간 현장 사찰을 통해 우발적 핵전쟁 위험을 낮추기도 했다.
양국의 핵군축 시스템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신이 커지면서 수년간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다 종언을 고했다. 미국은 중국이 핵무기를 늘리고 비밀 핵실험을 하고 있다며 새로운 핵군축 조약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다극화 양상의 핵질서 속에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핵보유국을 비롯한 각국은 저마다 핵군비 경쟁에 나서 핵확산 도미노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미국은 새 국방전략(NDS)에서 동맹국들에 '자국 방어의 1차 책임'을 지도록 했으며, 한국에는 '중요하되, 더 제한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자국이익 우선주의가 낳은 현실이다.
유럽은 자체 핵무장을 공론화하고 있다. 유럽 정상들은 최근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자강론을 강조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 자체 핵우산 논의를 공식화했다. 핵무기를 금기시하는 국제사회 공감대와 규범이 약해진 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과 국방전략 변화에 자극받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총리실 간부가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라 하지만 일본 집권 자민당이 최근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국'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터라서 해프닝으로 넘기기는 어렵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반도 긴장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은 지난 19~25일 열린 제9차 당대회에서 '연차별 국가핵무력 강화'와 '핵무기수 증대·운용수단 확장'을 공언했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지만 국내 일각에서 핵무장론까지 나오고 있다. 대북 억제력 확보가 관건이다.
한국 정부는 핵잠수함(SSN) 건조에 주력하며 2030년대까지 4척 이상을 보유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는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다. 전력화 시기는 북한이 빠를 전망이다.
한반도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다. 평화가 무너질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무엇보다 억제력 없는 평화는 상대의 의지에 기대는 불안한 상태일 뿐이다. 강대국의 핵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밀한 전략으로 움직이는 국가만이 살아남는다.
한국은 한미정상 합의사항인 핵추진 잠수함 건조, 민간용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 전략자산 협력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는게 급선무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긴장 관리 능력도 키워 다층적 외교·안보망을 구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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