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D ON A MUSHROOM I SAW THE BEAUTY AT ONCE THEN GONE, FLOWN AWAY
- Anonymous haiku(俳句・단시)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2026 봄/여름 오트 쿠튀르는 가벼움의 본질을 탐구한다. 무게를 덜어내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그 섬세한 균형 위에서 순수하게 정제된 즐거움이 피어났고, 우리는 날아가 버리기 전 그 짧은 순간을 온전히 마주했다.
가벼움은 무게를 덜어낸 결과가 아니라, 모든 것을 정제하고 남은 핵심이다.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과잉을 버리고, 본질만 남겼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벼움이 탄생한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썼다. “역사란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그에게 가벼움은 무거운 의무와 ‘그래야만 한다’는 강요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샤넬에게도 가벼움은 선택이 아닌 원칙이었다. 코르셋에서 여성을 해방시키고, ‘노동자의 옷’으로 여겨지던 트위드를 고급 소재로 승격시키며, 샤넬은 가벼움이 곧 자유임을 증명했다. 겹겹이 쌓인 의무와 기대, 역할과 책임의 무게 속에서 가벼움은 숨 쉴 수 있는 여백이 되고, 그 여백 속에서 진정한 즐거움이 피어난다. 무게를 덜어내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그 섬세한 균형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 할 미덕이다. 가벼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며, 살아 있음을 온전히 느끼게 하는 일이다.
오트 쿠튀르는 샤넬의 진정한 영혼이며 하우스의 근원이자 완전한 표현입니다. 디자이너만큼이나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옷을 입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이야기를 갖게 됩니다. 각자의 이야기, 감정적 공명, 여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캔버스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 샤넬 아티스틱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가 선보인 샤넬 2026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바로 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쇼였다. 그랑 팔레를 가득 채운 것은 파스텔 톤의 거대한 버섯들과 분홍빛 버드나무였다.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무대에서, 샤넬이 나눠준 쇼 노트는 한 편의 하이쿠(haiku・俳句)로 시작됐다. “버섯 위의 새/ 찰나의 아름다움/ 날아가 버렸네”(작자 미상). 이 짧은 시는 컬렉션 전체를 압축했다. 덧없이 아름다운 것, 금방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것, 그러나 바로 그 가벼움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
쇼는 시어한 파스텔 톤의 옷으로 시작됐다. 스타킹부터 액세서리, 옷, 사방의 공기까지 모든 것이 금방 날아가 버릴 새처럼 가벼워 보였다. 마티유 블라지는 샤넬 수트를 실크 무슬린이라는 극도로 섬세한 소재로 재해석했다. 투명함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이 수트는 형태가 명확히 드러나면서도 본질적 차원으로 절제되어 있었다. 연이어 보여지는 가벼운 뉴 룩들은 마치 잘 그려진 수채화처럼, 색과 형태가 공기 중에 번져 나가는 듯했다. 샤넬이 겹겹이 쌓아온 역사의 기억처럼 보이는 이 옷들은 동시에 착용자 개인의 서사와 얽혀 있다. 마티유 블라지는 쿠튀르를 자서전으로 변형시켰다. “이 작업은 신체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감정에 관한 것이기도 해요. 그것이 바로 옷을 착용하는 사람이 옷에 불어넣는 것이죠.” 실제로 컬렉션에는 착용자의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모델들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상징을 선택해 옷 안쪽에 자수로 새겨 넣었다. 어떤 이는 자녀의 생년월일을, 어떤 이는 러브레터를, 또 어떤 이는 시 한 구절을, 한 모델은 ‘친절(kindness)’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옷에는 각자의 이니셜과 개인적으로 선택한 토템들, 예컨대 하트, 교차된 타로 카드, 행운의 날짜들이 르사주 아틀리에의 손길로 수놓였다. 착용자가 서사의 공동 저자가 되는 순간, 오트 쿠튀르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를 담은 감정적 아카이브가 된다. 또한 섬세하게 수놓은 러브레터, ‘N°5’ 향수 병, 레드 립스틱 같은 감정적 유물이 실크 무슬린이나 주얼리의 형태로 등장했다. 포켓에 숨겨지거나, 안감에 꿰매지거나, 무게감을 더하는 상징적 체인에 매달린 이 오브제들은 아이코닉한 백의 ‘팔림프세스트(겹쳐 쓴 양피지)’처럼 겹겹이 쌓여 착용자만의 내면을 외부로 노출했다. “이번 컬렉션은 신체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감정에 관한 것이기도 해요. 그것이 바로 옷을 착용하는 사람이 옷에 불어넣는 것이죠. 또한 의상에 무게를 더해주는 체인의 발전도 있는데, 그 체인에는 작은 참 장식들 즉, 당신만의 주얼리가 달리게 됩니다. 착용하는 사람의 내면의 삶을 반영하는, 의상 속의 또 하나의 내면 세계인 셈이죠.”
트위드부터 데님까지 가벼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룩에 이어, 샤넬의 직조 기술을 살린 룩들이 등장하며 변신이 시작됐다. 컬렉션의 중심에 선 여성들이 서서히 새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회색빛 비둘기의 소박함, 핑크빛 저어새의 화려함, 왜가리의 날렵함, 코카투의 장엄함, 흔한 것부터 이국적인 것까지, 새들은 le19M 공방 장인들의 손끝에서 옷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깃털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자수로, 플리츠로, 직조로 깃털의 본질만 남겼다. 마티유 블라지가 말한 ‘모킹 버드(Mocking Birds)’는 가짜 깃털이 아니라 깃털의 정수를 재해석한 것이었다. 또한 착용자의 몸의 형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실루엣은 옷이 주어진 형태가 아니라 입는 사람이 만들어낸 형태임을 보여줬다. 마티유 블라지는 스케치도, 레퍼런스 이미지도 없이 모델의 몸 위에서 직접 이 컬렉션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쿠튀르의 정의입니다.” 그의 말처럼, 이 옷들은 착용자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아틀리에 ‘플루’와 테일러의 최고급 재단 기술이 집약된 레이븐 블랙 룩부터 자수, 레이어링, 플리팅, 직조를 통해 표현된 복잡한 컬러의 깃털까지, 모든 것은 소재와 컬러의 중첩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무거운 느낌이 없었다. 옷들은 하나같이 쇼장의 가벼운 바람에도 자연스럽게 리듬감을 만들어냈다. 마티유 블라지는 컬렉션을 설명하며 ‘감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옷들은 보는 것을 넘어 만지고, 느끼기 위한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이 쇼에서 눈에 띄는 요소는 중년 모델의 등장이었다. 이 모델들의 존재는 마티유 블라지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줬다. 샤넬이 처음 여성들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켰듯, 그는 여성들을 ‘젊음’이라는 또 다른 코르셋에서 해방시킨다. 여기에서 새는 궁극적 자유의 상징이거나, 혹은 그저 새 자체로 존재한다. 자연은 변형되기도 하고, 단순히 찬미되기도 한다. 샤넬의 원형들은 컬렉션의 뿌리이면서 동시에 꿈의 세계의 일부다. 마치 까마귀나 까치 무리처럼, 새들은 마법에 휩싸인 버드나무 숲속의 거대한 버섯 주위에 모여들었다가 이내 자유롭게 날아간다.
이 가벼움과 즐거움이 깃든 쇼를 보는 것은 하나의 명상 같았다. 패션이 스펙터클을 향해 가속화하는 시대에, 마티유 블라지는 멈추고 듣고 정제한다. 그는 샤넬의 영혼을 발굴하되 자신의 자아를 강요하지 않는다. 재창조를 기반으로 세워진 하우스에게 이런 접근은 급진적이면서도 경건하다. 잠시 동안, 오트 쿠튀르는 시적인 멈춤을 선사한다. 그리고 날아가 버린다. 가벼움은 더 이상 불안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며, 본질이고, 아름다움 그 자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그러나 그 가벼움으로 인해 더욱 깊이 각인되는 순간들. 말란 쿤데라가 말했듯 “소설가가 할 일은 이데올로기의 무게를 벗겨내고 생의 가벼움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이번 쇼를 통해 마티유 블라지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해야 할 일을 해냈다. 쿠튀르의 무게를 덜어내고, 존재의 가벼움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날아가 버리기 전의 그 짧은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정제된 즐거움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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