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 최근 학교 현장에서 축구 등 신체활동을 제한하거나 사실상 금지하는 분위기가 확산한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 민원 증가, 책임 문제 등이다. 누구도 다친 아이를 보고 싶지 않고, 학교 또한 위험을 줄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한 가지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한다. 과연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움직임까지 멈춰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운동은 단순한 체육 시간이 아니다.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몸뿐 아니라 마음도 자란다. 친구와 협력하고, 경쟁 속에서 배려를 배우며,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힌다. 운동장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장면은 교과서 안에서만 배울 수 없는 사회적 경험이다. 그런데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운동 자체를 줄이거나 제한하는 현실은 아이들로부터 이런 성장의 시간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사고 예방은 중요하다. 그러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접근이 과연 현실적인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뛰면 넘어질 수 있고, 공을 차면 부딪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뛰는 행위 자체를 금지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학교’뿐이다. 우리는 이미 체력 저하와 비만, 스마트폰 과의존 같은 문제를 체감하고 있다. 아이들이 운동장을 떠나면 그 시간은 대부분 화면 앞에서 소비된다. 안전을 지키려다 건강을 잃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학교 체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구조, 민원을 피하려는 문화, 작은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아이들의 움직임을 점점 좁게 만들고 있다. 스포츠는 본래 위험을 관리하며 배워가는 과정이다.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운동의 본질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지역을 살리고 공동체를 연결하며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힘이다. 유소년 시절의 작은 축구공 하나가 어떤 아이에겐 평생의 취미가 되고, 또 다른 아이에겐 진로가 된다. 만약 성장기에 운동의 문을 닫아버린다면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까지 스스로 줄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방향은 금지가 아니라 균형이다. 안전 장비를 강화하고 지도와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며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운동을 지속해야 한다. 아이들을 운동장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한 환경 안에서 마음껏 뛰게 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아이들은 뛰어야 자란다. 숨이 차오르는 순간, 친구와 함께 웃는 순간, 지고 나서도 다시 공을 차는 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성장을 만든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의 무릎을 보호하려다 미래의 심장을 멈추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성장기에서 운동을 빼면 남는 것은 조용한 교실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더 크고 뜨거운 가능성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운동을 막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계속 뛰게 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결국 사회의 방향은 그 질문에서 결정될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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