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족은 740년경 중앙아시아 강대국 돌궐국(튀르크족)을 멸망시키고 840년까지 100여년간 초원지역을 지배한 유목민 강대국이다. 키르기스스탄 종족에게 840년경 멸망 후 일부 위구르 귀족이 톈산산맥을 넘어 타클라마칸사막으로 도망 와 왕국을 세운 것이 신장지역 위구르 종족의 시작이다.
300년 전 청나라는 이곳을 정복 후 새로운 영토라는 뜻의 신장(新疆)이라 명명하고 편입됐다. 1911년 청나라 멸망 후 위구르족의 독립국가 수립 분위기가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민족주의운동 바람이 불었다. 1919년 우리의 3·1운동, 상하이임시정부 수립도 세계적인 민족주의운동 분위기 아래서 이뤄졌다.
1924년 위구르족 지도자들이 독립국가 수립을 논의하면서 종족 이름을‘위구르족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후부터 위구르족 명칭이 부활했다. 위구르족은 장제스와 마오쩌둥 군대가 내란 중이던 1940년대 카슈가르를 수도로 정하고 동(東)투르키스탄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중국을 통일한 마오쩌둥 정권이 1949년 다시 군대를 보내 신장을 점령했다. 최근 1997, 2006년 카슈가르 및 쿠차 등의 대학생이 독립운동 시위를 주도했다.
오늘은 중국 출국, 키르기스스탄 입국, 파미르고원의 일부인 톈산산맥과 톈산고원를 통과해 530여㎞ 먼 산길을 이동해야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키르기스스탄 제2의 도시 ‘오시’다.
톈산산맥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국경을 이루는 타클라마칸사막 북부의 산맥이다. 우리는 톈산산맥 서쪽에 있는 산길을 통해 키르기스스탄으로 향하고 있다. 대(大)파미르고원의 일부인 이쉬케르탐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1천400년 전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근거지로 하는 소그드(이란계 종족) 상인들이 이 길을 통해 당나라로 장사하러 다녔다. 톈산산맥으로 가는 길은 형형색색 바위와 절벽, 가끔은 오아시스 촌락 등 도로변 자연이 아름답다. 철 성분의 많고 적음에 따라 바위 색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일대일로’ 길이라는 도로판이 있다. 국경으로 가는 중간에 일곱 번이나 중국 공안, 군인 등의 검문을 받았다. 매번 시간이 늦어진다. 카슈가르에서 110㎞ 이동 후 중국 세관이 있다. 세관 통과 후에도 군인이 지키는 국경초소까지 135㎞를 더 가야 한다. 출국심사는 간단히 하는 게 일반적인데 중국 당국의 검사는 엄격하다.
오전 8시 숙소를 출발했는데 해발 2천800m의 고지대에 있는 중국군 초소를 지나니 중국 시간으로 오후 4시다. 250㎞ 오는 데 검문, 통과 절차 등으로 거의 8시간이 걸린 셈이다. 다행히 키르기스스탄의 표준시간은 중국보다 3시간 시차가 빠르다. 키르기스스탄 영내에 들어오니 오후 1시에 맞게 3시간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니 오후 여정에 여유가 생긴다.
세관 입구에 많은 화물차가 대기하고 있다.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공무원의 점심시간이라 업무를 중단하고 있다. 황량한 3천m 고산지대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키르기스스탄 직원들은 동양계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친절하다. 해발 3천m 국경에는 여행객 대기실도 없고 간이화장실도 없다. 도로 옆에서 환상의 비취색 하늘을 보며 기다린다. 두 시간 이상 기다린 후 키르기스스탄 국경을 통과했다. 국경 통과 후 해발 3천~ 4천m의 톈산산맥, 톈산고원을 통과한다.
신기하게도 3천m 이상 고원에 광대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 여름철 초원은 연녹색 풀로 덮여 있다. 풀을 뜯는 소, 말, 양 등 가축과 유르트(중앙아시아에서는 게르를 유르트라 부름)가 목가적이다. 멀리 지평선 너머에는 톈산산맥의 만년설이 햇빛에 반사돼 찬란하다. 눈 덮인 산봉우리에는 하얀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의 조화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운좋게도 바람 한 점 없이 따사한 햇볕이 참으로 좋다. 해발고도 3천500m 초원길을 오르내리며 달리고 있다. 톈산산맥과 톈산고원은 천연의 무공해 지역이다. 유르트가 곳곳에 있고 과거 고대 중국인이 천리마(千里馬)라 불렀던 말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중국에서 톈산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통과하는 길은 5개가 있다.
1천400년 전 당나라 현장 스님은 아커수(우리가 3일 전 숙박한 도시)에서 출발해 톈산산맥을 넘어 서돌궐 왕에게 갔다. 당시 톈산산맥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대당서역기에 기록했다. 현장은 아커수에서 겨울철 눈이 녹는 두 달을 기다렸다가 봄철에 톈산산맥으로 향했다.
“산은 매우 험준해 끝이 하늘에 닿아 있다. 개벽 이래 눈과 얼음이 쌓여 덩어리를 이루고 봄여름에도 녹지 않고 엉겨 붙어 구름과 맞닿아 있다. 눈바람이 이리저리 몰아치니 비록 가죽옷을 겹쳐 입었어도 찬 기운을 막아낼 수 없다. 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으려 해도 머무를 만한 마른 땅이 없다. 얼음 위에 자리를 깔고 누울 수밖에 없다. 7일을 걸은 뒤 산을 통과했다. 열 명 중 서너 명은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었다. 말이나 소의 손실은 이보다 훨씬 컸다.”
톈산산맥 서쪽 중앙아시아 땅은 페르가나 지역이다. 고대 중국의 비단과 페르가나 지역의 천리마와 교역했던 ‘견마(絹馬)무역’의 산지다. 야생에서 뛰어다니며 자라는 페르가나 지역의 말은 중국말보다 체구가 크고 힘이 세 중국이 탐냈던 ‘한혈마(汗血馬)’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