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설계하는 핵심 축으로 부상하면서 그의 인적 네트워크가 국제 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단순히 참모의 역할을 넘어 미국 국정 운영의 설계자로 활약하는 인물의 주변 인물들 역시 미국의 향후 국정 운영 방향을 파악하고 현재 비공개로 추진 중인 정책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르데스크 취재 결과, 밀러 부비서실장의 견고한 인적 네트워크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두루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근로자 체포사태 뒤에도 그가 있었다…트럼프 백악관의 막후 실세 스티븐 밀러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올해 40세(1985년생)인 밀러 부비서실장은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비(非)선출직 관료 중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인물로 꼽힌다. 현재 그의 공식적인 직책은 대통령 부비서실장 겸 국토안보 고문이다. 그러나 그의 권한은 사실상 '미국의 2인자'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정책으론 '반(反)이민' 정책이 꼽힌다. 과거 트럼프 1기 시절 반(反)이민 정책을 주도했던 그는 2기 때도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해 9월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엔솔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이민세관단속국에 체포됐을 당시에도 그 배후에 밀러 부비서실장이 있었다. 당시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강경 진압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자신은 밀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억울함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강경한 이민 단속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밀러 부비서실장은 그린란드 합병,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 작전 등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인 결정을 하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워싱턴 정가에 따르면 밀러 부비서실장의 백악관 내 영향력 역시 실세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단적인 예로 백악관 루스벨트룸 회의에서 그의 자리는 테이블 상석에 마련된다. 또 백악관 관료들은 물론 장관들조차 그와의 면담을 위해 대기까지 할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야 책사'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스티븐 밀러의 공식 직함은 대통령 부비서실장이지만 하는 일과 권한은 총리나 다름없다"며 "미국의 굵직한 정책들의 경우 그가 깊이 관여하지 않는 사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밀러 부비서실장의 막강한 권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중론이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괴팍한 행보에 지친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백악관을 떠날 때도 4년 내내 곁을 지키며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였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밀러 부실장에 대해 "가장 오랜 기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가장 신뢰받는 보좌관 중 한명으로 거의 10년간 함께 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와 그의 검증된 리더십 능력에 대해 최고의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곁을 지킨 수준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언어를 세련된 정책 프레임으로 가공해내는 독보적인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일례로 트럼프행정부 1기 시절 '이슬람권 국가 여행 금지령' 선포로 국제사회의 공분이 일었으나 그는 "미국을 안전하게 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를 '테러 위험 국가로부터의 입국 제한'이라는 구체적인 법적 프레임으로 재가공해 사태를 무마시켰다.
워싱턴 정가에선 그가 장관직이 아닌 부비서실장에 머무는 것은 철저히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분석이 많다. 장관이나 주요 부처 수장은 상원의 까다로운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강경파인 밀러의 경우 인준 과정에서 야당의 거센 공격으로 인해 낙마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결정 역시 최대한 그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사례로 지목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정치적 소모전을 피하면서 실질적인 권력의 정점에서 국정을 진두지휘하는 '막후 실세'로 불리기에 충분한 인물이라는 평가다.
백악관 거물부터 한국 정치인까지…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의 '글로벌 네트워크' 주목
밀러 부비서실장은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2021년 트럼프 대통령 퇴임 직후 자신이 직접 설립한 보수 성향의 법률 단체 '아메리카 퍼스트 리걸'(America First Legal, AFL)이 자리하고 있다. 이 단체는 표면적으론 법률 단체를 표방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불법적인 의제에 맞서 싸우고 미국 우선주의를 수호한다"를 슬로건으로 내걸 정도로 뚜렷한 정치색을 내보였다. 주된 활동 역시 바이든 정부 이민 정책, 학자금 대출 탕감, 코로나19 백신 의무화 등에 대한 위헌 소송 등 정치적 색채가 짙었다.
해당 단체 이사회 명단에는 밀러 부비서실장를 비롯해 그의 심복으로 알려진 진 해밀턴 공동 창립자, 다이엘 앱스타인 부사장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진 해밀턴은 트럼프 1기 법무부와 국토안보부 고문을 역임한 법률 전문가다. 다니엘 앱스타인 역시 트럼프 1기 백악관 법률 고문 출신이다. 이들 중 다니엘 앱스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러라고 저택이 위치한 플로리다 팜비치 지역 사회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AFL의 초기 자본은 트럼프 1기 비서실장이었던 마크 메도스가 운영하는 '컨서버티브 파트너십 인스티튜트(CPI)'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CPI가 미국 국세청(IRS)에 제출한 2021년 세무 신고서에 따르면 CPI는 AFL 설립 초기에 약 133만달러(한화 약 19억원)를 지원했다. 이후 AFL은 뱅가드그룹 등의 외부 펀드들로부터 약 4400만달러(한화 약 600억원)의 지원을 받으며 단숨에 거대 조직으로 급성장했다.
CPI의 주요 인사로는 트럼프 1기 경제자문을 맡았던 짐 드민트 회장, 공화당 상원 운영위원회 출신인 에드 코리건 CEO, 백악관 예산관리국 비서실장을 역임한 웨슬리 덴튼 등이 있다. 이들 모두 미국 보수 진형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이사회 멤버 출신이다. 헤리티지 재단의 창시자인 고(故) 에드윈 퓰너 전 회장은 한국 재계와도 수십 년간 막역한 사이를 유지해온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과도 깊은 교분을 맺은 바 있다. 퓰너 전 회장은 이러한 인연을 바탕으로 2023년 3월부터 한화그룹의 지주사 격인 (주)한화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자신의 정계 진출 기반을 마련해 준 초기 후원자들과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초기 후원자들 중에는 미국 보수 진영의 유명 활동가 데이비드 호로비츠도 포함돼 있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듀크대 재학 시절부터 그와 교류하며 강경한 우파적 가치관을 가지게 됐다. 덕분에 졸업 후 미셸 백먼 전 하원의원의 공보비서에 발탁될 수 있었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적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이후 밀러 부비서실장은 제프 세션스 공화당 상원의원(전 법무장관)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강경한 반이민 정책의 이론적 틀을 완성했다. 그 시기 트럼프캠프에 합류하며 트럼프 대통령과도 인연을 맺었다.
밀러 부비서실장의 인적 네트워크에는 한국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미국 내 한인 보수 연합체인 KCPAC(한국보수정치행동회의)가 대표적이다. 밀러 부비서실장은 미국 보수 단체 '보수정치행동회의(CPAC)'가 주최하는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데 KCPAC 역시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CPAC 국제 파트너 자격으로 행사 주최에 힘을 보태고 있다. 또 밀러 부비서실장은 진보 진영의 정체성 정치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이 미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KCPAC는 그의 목소리를 한국계 커뮤니티에 전파하는 스피커 역할을 맡고 있고 있다. KCPAC을 포함한 한인 보수 단체들은 "법을 지키는 합법 이민자가 존중받아야 한다"며 강경 이민 정책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재 KCPAC 이사회는 설립자인 애니 찬 명예회장을 필두로 최원목 회장(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스 탄 미국 지부 의장, 그랜트 뉴삼 미국 지부장, 민경욱 한국 지부장(전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실리콘밸리 개발자 출신으로 오디오·비디오 솔루션 기업 ESS 테크놀로지를 설립한 애니 찬 명예회장은 하와이 기반 보수 교육 단체 '하와이 뉴 인스티튜트'를 창립해 듀크 아이오나 전 하와이 부지사 등과 활동하며 보수 세력 확장에 힘을 보탰다. 최원목 회장은 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난 정권 당시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에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됐다. 민경욱 한국 지부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홍보수석실 대변인을 역임한 뒤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스티븐 밀러와 공화당 강경파의 '선거 무결성(Election Integrity)' 이슈 홍보에도 열을 올린 바 있다.
전문가들은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이 구축한 방대한 네트워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실행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은 단순한 정책 보좌역을 넘어 현재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정 전반의 실행력을 장악한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과 정부는 백악관의 공식 라인뿐만 아니라 밀러를 중심으로 한 인적 고리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해 대미 전략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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