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 등에서 남성들을 약물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20대 여성 김 모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SNS 계정 팔로워가 단기간에 수십배 급증했다. 이후 해당 계정은 비공개로 전환됐지만 중대 범죄 피의자의 외모가 온라인에서 빠르게 소비되는 현상은 또다시 반복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외모지상주의 문화와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이 결합한 '범죄자 팬덤화' 현상으로 규정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24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김 씨의 이름과 학력, 개인 SNS 주소 등 신상정보가 담긴 게시물이 확산됐다. 이후 김 씨로 추정되는 계정의 팔로워 수는 25일 오후 3시 기준 1만1000명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지난 10일 240여명에 머물렀던 팔로워 수가 2주만에 4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강력 범죄 피의자의 SNS가 일종의 '관전 콘텐츠'로 소비된 셈이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9일까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든 음료를 20대 남성 3명에게 건네 이 중 2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1차 범행 대상이었던 남자친구는 음료를 마신 뒤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회복했다. 이후 김 씨는 같은 수법으로 2·3차 범행을 저질렀고 두 피해자는 모두 숨졌다.
그럼에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사건의 중대성보다 가해자의 외모가 먼저 소비됐다. 김 씨가 남긴 게시물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새로 달렸다. 상당수는 비난이었지만 일부 댓글에는 "예쁘다 인정", "예쁘니 무죄", "감형해야 한다"는 식의 옹호 발언도 적지 않았다. 이는 범죄의 본질을 흐릴 뿐 아니라 피해자와 유가족을 고려하지 않은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 씨로 추정되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25일 비공개로 전환됐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도쿄 이케부쿠로 성매매 사건' 용의자의 외모가 SNS에서 화제가 되며 '가장 아름다운 범죄자'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사건의 범죄 혐의보다 용의자의 이미지가 먼저 관심을 받은 것이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됐다. 2022년 11월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대학생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브라이언 코버거 사건은 대표적이다. 체포 직후 공개된 머그샷과 법정 출석 장면이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빠르게 확산됐고 일부 이용자들은 그의 외모를 두고 "영화 주인공 같다"는 반응을 남겼다. 팬 계정과 무죄를 주장하는 콘텐츠도 다수 생성됐다. 숏폼 플랫폼에서는 그의 표정을 슬로모션으로 편집해 음악을 입힌 영상이 수십만 회 이상 조회되며 알고리즘을 통해 재확산됐다. 피해자 4명의 이름보다 피의자의 이미지가 더 널리 소비되는 '주객 전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2014년 260여명의 사상자를 낸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의 용의자 조하르 차르나예프 역시 '#FreeJahar'라는 온라인 팬덤이 형성됐다. 그는 수감 중 1000통이 넘는 편지를 받았고, 일부 지지자들은 법정 인근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연예인에게 보내는 것처럼 안부 편지를 보내거나 개인적 일상을 공유하는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범죄자에게 성적·정서적 매력을 느끼는 '하이브리스토필리아'의 일종으로 분석했다. 중범죄자에게 동조하거나 구원 환상을 품는 심리, 유명세에 대한 욕구, 위험한 관계에서 느끼는 스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SNS 알고리즘이 자극적 이미지를 우선 노출하는 구조가 더해지면서 현상은 증폭된다. 클릭과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는 플랫폼 구조가 범죄자 이미지의 확산을 가속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는 점이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두 명을 숨지게 한 범죄자를 외모를 이유로 옹호하는 행위는 결국 피해자와 유가족을 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범죄자를 매력적 존재로 소비하는 문화는 범죄 예방 측면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외모지상주의 문화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이제는 강력 범죄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안은 더욱 심각하다. 범죄의 중대성과 도덕적 책임은 뒤로 밀리고, 외모·이미지·밈(meme) 요소가 전면에 부상하는 현상은 사회적 가치 체계의 왜곡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일정 수준의 플랫폼 자율 규제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알고리즘이 자극적 범죄 이미지를 우선 노출하지 않도록 조정하고, 피해자 보호 중심의 보도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시에 이용자 스스로의 미디어 리터러시 제고 역시 중요 과제로 꼽힌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역시 "살인범에 대한 팬덤 형성은 왜곡된 사회 병리 현상"이라며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범행과 무관한 요소가 과도하게 주목받을 경우 사회적 도덕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남들과 다른 발언을 통해 관심을 얻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며 "살인이라는 중대 범죄마저 '콘텐츠'로 소비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SNS 이용 비율이 높은 청소년층에게 범죄 미화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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