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타이거리서치가 26일 발표한 '아시아 스테이블코인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가 약 3000억달러(한화 약 4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이후 연평균 약 750%의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며 디지털 금융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은 이 시장에서 유통량의 99%는 여전히 미국 달러에 연동된 코인이 장악하고 있다.
◆ 美 달러 스테이블 코인, 국채 판매 창구로 활용
미국은 이 흐름을 패권 유지의 도구로 전환했다. 작년에 통과된 '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준비금을 반드시 미국 국채로 보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법안의 효과는 시장 수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표적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테더(Tether)와 써클(Circle)은 현재 미국 국채 보유량 순위에서 각각 세계 18위와 35위권에 위치해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미국 국채 판매 창구가 된 셈이다. 아시아 각국이 규제 설계를 논의하는 사이 달러는 디지털 금융 생태계에서도 패권을 굳히고 있다.
◆ 싱가포르, 'SCS 프레임워크' 확정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결제서비스법(PS Act) 개정과 함께 'SCS(단일통화 스테이블코인) 프레임워크'를 확정하고 2026년 중순 법적 시행을 예고한 상태다. G10 통화 연동을 폭넓게 허용하는 개방 구조 덕분에 써클(Circle), 팩소스(Paxos), 리플(Ripple) 등 글로벌 발행사들이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현지 기업인 스트레잇스엑스(StraitsX)는 이미 싱가포르달러 기반의 'XSGD'와 달러 연동 'XUSD'를 발행하며 운영 단계에 진입했다. 타이거리서치는 싱가포르를 두고 "아시아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일본, 아시아 첫 법제화...메가뱅크도 가세
일본은 아시아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가장 먼저 법으로 제도화한 나라다. 2022년 자금결제법 개정을 거쳐 2023년 6월 시행에 들어간 일본의 규제 체계는 발행 자격을 은행, 신탁회사, 자금이체업자로 엄격히 한정하는 '은행 전속 모델'을 채택했다.
스타트업 JPYC Inc는 이 틀 안에서 2025년 10월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JPYC'를 정식 출시했으며, 일본 3대 메가뱅크도 발행 채비를 갖추고 있다. 보수적 구조지만 법적 안정성을 담보로 기관 신뢰를 얻는 전략이다.
◆ 홍콩, 법은 통과됐지만 인가는 '0건'
홍콩은 2025년 8월 전용 법률인 '스테이블코인 조례'를 시행했다. 발행 감독은 홍콩통화청(HKMA), 거래소 감독은 증권선물위원회(SFC)가 나눠 맡는 이원 체계를 구축했으며 참조 통화에 제한을 두지 않아 제도적 유연성은 높다.
그러나 2026년 2월 현재 정식 인가를 받은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36개사가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지만 심사가 지체되면서 선언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징둥 계열의 'JINGDONG Coinlink'와 스탠다드차타드·애니모카브랜즈·HKT 컨소시엄이 인가 대기 상태로 알려졌다.
◆ 한국, 금융위·한은 '주도권' 싸움에 입법 표류
한국의 사정은 더 복잡하다. 지난해 디지털자산 기본법(DABA) 1단계가 국회를 통과했지만 스테이블코인 세부 규정을 담을 2단계 입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금융위원회는 핀테크 기업 등 민간에도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행은 통화 안정을 이유로 은행 중심 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두 기관의 주도권 다툼이 입법을 가로막는 형국이다. 그 사이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IQ·Frax가 역외에서 원화 연동 코인 'KRWQ'를 발행하고 비댁스(BDACS)가 개념 검증(PoC) 차원의 'KRW1'을 내놓는 등 시장은 먼저 움직이고 있다. 네이버페이-업비트 컨소시엄도 인가 신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 중국, 민간 완전 봉쇄...'디지털 위안' 승부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지난 2021년 가상자산 관련 활동 전체를 불법 금융행위로 규정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위안화 연동 코인의 국내외 무허가 발행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추가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완전히 차단하는 대신 국가가 직접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으로 대체하겠다는 전략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막는 동시에 금융 주권을 국가가 독점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타이거리서치는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 각국은 자국통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규제 설계와 자금 유출 리스크 사이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그 사이 글로벌 시장은 달러 중심으로 빠르게 굳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비중이 전 세계 유통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아시아 각국의 선택이 디지털 금융 패권의 미래 지형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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