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취지와 달리,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25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상법 일부개정안이 재석 176명 중 찬성 175명(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법안은 자사주를 취득한 경우 1년 내 소각을 원칙으로 하고, 이미 보유 중인 자사주 역시 법 시행 후 6개월의 유예를 거쳐 최대 1년 6개월 안에 정리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 운영 등 예외 사유가 인정될 경우 이사회 전원의 서명·날인이 포함된 보유·처분 계획을 마련해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으면 보유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주총 의결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소각이 유통 주식 수 감소를 통해 주당순이익(EPS)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반면 국민의힘은 헤지펀드 등 행동주의 투자자의 적대적 인수 시도에 국내 기업이 취약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과거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에 활용된 사례가 있다. 2003년 영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이 SK를 상대로 경영권 공격에 나섰을 당시, SK는 보유 자사주 일부를 우호 세력에 매각해 방어에 성공했다. 2015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경영 참여를 시도했을 때도 자사주가 주요 방어 수단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등 경영권 보호 장치가 제한적인 구조여서 자사주가 사실상 '완충 장치' 역할을 해왔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상장사 1723곳(66.2%)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자사주 비율이 10% 이상인 기업은 8%대, 20% 이상인 기업도 2%를 넘는다.
주요 그룹 지주사와 대기업 가운데도 자사주 비중이 두 자릿수에 이르는 곳이 적지 않다. 롯데지주, SK, 두산, LS, 삼성화재, HD현대 등은 자사주(우선주 포함) 보유 비율이 10%를 상회한다.
재계는 자사주가 단순한 주가 관리 수단을 넘어 재무 전략의 한 축이라고 설명한다. 자사주는 재무구조 개선, 운영자금 확보, 교환사채(EB) 발행, 인수합병(M&A) 과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돼 왔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자사주를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제한적인 기업에는 자사주가 전략적 자산으로 기능해 왔다"며 "일률적 소각 의무화는 경영 유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M&A 과정에서 취득한 목적성 자사주 등 세부 쟁점에 대해 추가 논의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주주 환원 강화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아니면 경영권 불안과 투자 위축이라는 부작용을 낳을지에 대해 재계와 정치권의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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