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의 꿈과 정체성을 투영한 '판타지 관'을 창시한 세스 케인 콰이
- 남편을 향한 사랑을 담은 '타탄체크 관'과 펑크 스피릿의 정수인 '그래피티 래커 관'으로 마지막까지 브랜드 철학을 지킨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
- 삶의 지탱점이었던 '프로작 알약'에 안치된 캐리 피셔
- 평생의 업적인 '프링글스 통'으로 위트 있고 낭만적인 안식을 선택한 프레드릭 바우어
- 관 대신 거대한 '대포'를 통해 콜로라도 밤하늘의 불꽃으로 흩어진 헌터 톰슨
슈프림이 또 한 번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미국의 장례용품 브랜드 ‘타이탄 캐스크(titan casket)’와 협업해 장례용 관을 내놓은 건데요. 상징적인 로고를 얹은 빨간색 문을 열면 레오퍼드 퍼로 뒤덮인 베드가 등장합니다. 심지어 높낮이 조절도 가능합니다. 단순 오브제가 아닌 관으로서의 기능을 완벽히 갖춘 정말 ‘관’이니까요. 이 관은 슈프림이 단순한 패션 브랜드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습니다. 죽음까지 책임지는, 문화 그 자체가 되어버린 거죠.
아름다운 관은 아름다운 죽음을 만듭니다. 아주 먼 옛날 고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좋은 관에 묻히면 죽어서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는 믿음은 유효하죠. 관 표면에 사후세계의 수호신인 이시스와 네프티스를 정교하게 새긴 이집트 투탕카멘 금관이나 거대한 보석이 잔뜩 박힌 비잔틴 제국과 중세 귀족들의 관을 보면 알 수 있듯이요.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했던 아티스트의 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역사적으로 가장 패셔너블하게 기억될 여섯 가지의 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세스 케인 콰이 ‘판타지 관(Fantasy Coffins)’
아프리카 가나의 조각가 세스 케인 콰이(Seth Kane Kwei)와 그 후계자들이 만드는 관은 세계적인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들에게 관은 슬픔의 상징이 아니라,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것 혹은 그의 정체성을 형상화한 '마지막 선물'입니다. 1950년대 초, 세스 케인 콰이는 한 마을 추장을 위해 축제 때 사용할 카카오 열매 모양의 가마를 주문받는데요. 가마가 완성될 무렵 추장이 갑자기 사망했고, 가족들은 관 대신 그의 가마에 추장을 안치하게 됩니다. 이것이 최초의 '판타지 관'이 되었죠. 이후 그는 물고기를 좋아하던 어부에게는 거대한 물고기 모양 관을, 비행기를 타보는 게 소원이었던 할머니에게는 비행기 모양 관을, 심지어 콜라 병, 구두, 벤츠 자동차 모양의 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의 관은 단순한 장례 용품을 넘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나 파리 퐁피두 센터에 전시되며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죠.
그가 안치된 관과 유사한 형태의 카누 모양 관 | 출처: 케인 콰이 카펜트리 워크숍
그는 카누 모양의 관에 안치되었습니다. 콰이가 속한 가(Ga) 부족은 가나의 해안가에 거주하며 어업을 생업으로 삼던 민족이었거든요. 카누는 그들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책임지는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도구였죠. 또 죽음이 절망이 아니라 '다음 세상으로의 화려한 항해'라는 뜻을 담은 그의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맥안드레아스(MacAndreas) 관'
타탄체크 관이 묻힌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무덤 | 출처: 게티이미지
2022년 세상을 떠난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마지막 가는 길마저 본인의 브랜드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1993년 그녀가 남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맥안드레아스' 패턴으로 만든 관에 안치되었습니다. 25살 연하의 제자이자 디자인 파트너,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였던 남편의 이름을 딴 천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것은 그녀가 남긴 가장 로맨틱한 작별 인사였죠. 평생 펑크(Punk) 정신과 환경 운동을 외쳤던 그녀 답게, 관은 물론 장례식장 어디에서도 화려한 금속 장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절친한 친구이자 디자이너인 제프 뱅크스에게 "장례식이 열리는 교회를 내가 사랑하는 '해리스 트위드' 천으로 장식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처럼 트위드 천으로만 꾸며졌다고 하네요.
말콤 맥라렌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브랜드로 키워내고, 전설적인 록밴드 섹스 피스톨즈를 만들었던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 또한 범상치 않은 장례를 치렀습니다. ‘살기엔 너무 빠르고, 죽기엔 너무 젊다(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그의 관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졌죠. 이 문구는 그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런던 킹스 로드에서 운영했던 옷 가게의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번쩍이는 검정 래커로 칠해진 관 위에 대충 쓰여진 듯한 글씨, 뚜껑의 붐박스 그래피티까지 그야말로 펑크의 대부 다운 관. 그는 장례식 또한 비범하게 치렀습니다. 그의 관을 실은 운구차 뒤로 ‘혼돈에서 얻은 현금(Cash from Chaos)’이라는 문구가 적힌 2층 버스가 뒤따랐는데요. 이 버스에서는 섹스 피스톨즈의 노래들과 그의 히트곡 ‘My Way’가 흘러나와 거리 전부를 락스피릿으로 물들였습니다. 조문객들과 팬들이 슬퍼할 겨를 없이 버스를 따라 행진하며 춤을 추고, 환호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캐리 피셔 '프로작 알약(Prozac Pill) 관'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로 영원히 기억될 캐리 피셔(Carrie Fisher)는 죽음 마저도 그녀다운 유머와 솔직함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녀는 보통의 장례절차를 따르지 않고 곧장 유골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생전에 그가 가장 아꼈던 보물인 프로작이라는 이름의 항우울제가 되기 위해서였죠. 평생 양극성 장애와 정신 건강 문제를 당당히 고백하며 싸워온 그녀에게 이 알약은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그녀의 남동생은 ‘캐리는 생전 프로작 알약과 똑같이 생긴 통에 본인을 안치해주길 바랬었고, 그녀 또한 이 안에 본인이 담겨있는 것을 보면 분명 좋아할 것’이라며 그녀를 추모했다고 하네요.
프레드릭 바우어 '프링글스 관'
이번엔 프링글스를 발명한 프레드릭 바우어(Fredric J. Baur)의 이야기인데요. 1966년 칩이 부서지지 않게 함과 동시에 신선도를 유지해주는 프링글스 특유의 원통형 캔과 포장 방식을 설계한 그는 전세계인 모두에게 친숙한 과자를 만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최대 업적이었던 만큼 그는 그의 자녀들에게 본인을 프링글스 통에 담아 땅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아들 래리 바우어(Larry Baur)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월그린 마트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어떤 맛의 통에 아버지를 안치할지 고민했죠. 그는 결국 오리지널인 빨간색 통을 골랐습니다. 본인이 만든 역사적인 발명품과 함께 영원히 잠든 디자이너라니. 정말 낭만 있지 않나요?
헌터 S. 톰슨 '대포 관'
미국의 전설적인 작가이자 저널리즘의 이단아였던 헌터 톰슨(Hunter S. Thompson)은 자신의 재를 땅에 묻는 대신 거대한 대포에 담아 하늘로 쏘아 올리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죽기 전 본인이 원하는 대포 디자인까지 끝마쳐 두었죠. 이 대단한 유언을 현실로 만들어 준 건 그의 절친이었던 배우 조니 뎁. 그는 약 300만 달러(한화 약 40억 원)를 들여 47m 높이의 거대한 타워를 세웠고 그 끝에 헌터 톰슨의 상징과도 같았던 곤조 피스트(gonzo fist) 형상의 대포를 설치했습니다. 헌터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인 노먼 그린바움의 'Spirit in the Sky'와 밥 딜런의 'Mr. Tambourine Man'이 울려 퍼지며 그의 유골을 담은 대포가 발사됐고, 이내 그의 유골은 색색의 화려한 불꽃과 섞여 콜로라도의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생의 여정은 안전하게 무덤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만신창이가 되어 '와, 정말 멋진 여행이었어!'라고 외치며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남긴 유언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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