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가 꼰대로 남기를 바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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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가 꼰대로 남기를 바라는 이유

에스콰이어 2026-02-26 00:00:04 신고

한 달 뒤면 오스카 시상식이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주요 작품은 열 편이다. 〈마티 슈프림〉 〈트레인 드림스〉 〈시크릿 에이전트〉 〈햄넷〉 〈센티멘탈 밸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프랑켄슈타인〉 〈부고니아〉 〈씨너스: 죄인들〉 〈F1 더 무비〉다.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는 후자 다섯 편이다. 스타가 출연하는 이른바 할리우드 대작이다. 비교적 적은 예산의 최근작은 전자 다섯 편이다. 한국 개봉일은 오스카 시상식 전후다. 유명 배우가 등장하는 대작이 아니다. 규모가 작은 예술영화 영역의 작품들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블록버스터 같은 〈시크릿 에이전트〉는 브라질 작품이고, 〈센티멘탈 밸류〉는 비교적 잔잔한 노르웨이 영화다. 이런 영화들은 오스카 시상식 시기에 맞춰 개봉한다. 이름값을 홍보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효과가 있나. 효과는 없다. 아니다. 아주 소소한 효과는 있을 것이다. 내 세대는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문구에 쉽게 혹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 문구가 포스터에 박힌 영화는 반드시 보아야 하는 대작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1990년대를 한번 생각해 보라. 〈늑대와 춤을〉 〈양들의 침묵〉 〈용서받지 못한 자〉 〈쉰들러 리스트〉 〈포레스트 검프〉 〈브레이브하트〉 〈잉글리시 페이션트〉 〈타이타닉〉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작품상을 받았다. 모두가 본 영화다. 보지 않았더라도 이름은 아는 영화다. 오스카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영화다. 1990년대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들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대신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받았더라면 더 완벽한 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다만,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

2000년대도 한 번 생각해 보자. 〈아메리칸 뷰티〉 〈글라디에이터〉 〈뷰티풀 마인드〉 〈시카고〉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크래쉬〉 〈디파티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작품상 수상작이다. 〈크래쉬〉가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건 오스카 역사상 최악의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된다.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크래쉬〉가 당대에 전혀 인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폴 해기스는 당시 꽤 잘나가는 감독이자 작가였다. 당대 스타들을 출연시켜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도 드물었다. 어쨌든 대중적인 선택이기는 했다. 2000년대 작품상 수상작도 199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을 감으면 특정 장면이 떠오르는 영화들이다. 대형 유명 감독과 스타들의 이름이 모든 작품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오스카란 그런 것이었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이다. 각 시기의 작품상 수상작을 쭉 늘어놓으면 당대 가장 인기 있는 감독과 배우가 누구였는지, 당대 가장 인기 있는 장르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각 영화의 제목이 역사의 챕터다. 항상 그해 최고의 영화가 받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시간이 지나며 바뀌는 법이다. 1942년 작품상을 받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같은 해 후보에 오른 〈시민 케인〉과 〈말타의 매〉보다 나은 영화는 아니다. 후대의 많은 사람은 1942년 오스카 회원들의 선택을 비웃는다. 어쩌겠는가. 그 시대 사람들이 선택한 이유는 지금 시대 사람들이 선택하는 이유와 다를 수 있다. 2000년도 작품상 수상작 〈아메리칸 뷰티〉를 요즘 젊은 관객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집도, 가족도, 든든한 직장도 있는 40대 남자가 갑자기 자신을 되찾겠다며 십대 여성에 대한 망상이나 즐기는 영화라니. 너무나도 1990~2000년대 초반스럽다. 미투 시대 이후에는 누구도 만들지 않을 종류의 영화다.

오스카는 2010년부터 작품상 후보를 열 편으로 늘렸다. 〈다크 나이트〉가 2009년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전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역풍이 불었다. 모두가 〈다크 나이트〉를 사랑했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그 영화는 예전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도달하지 못한 어떤 예술적 경지에 도달했다. 2009년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슬럼독 밀리어네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프로스트 vs 닉슨〉 〈밀크〉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였다. 발리우드 스타일을 할리우드에 도입한 인간 승리담, 데이비드 핀처와 브래드 피트의 시간 판타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 영화,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성소수자 정치 영화, 그리고 홀로코스트 영화다. 완벽한 오스카 작품상 후보용 영화들로 꾸린 리스트였다. 〈다크 나이트〉를 후보에서 제외한 건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오스카의 편견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스카 후보를 고답적이고 고색창연한 취향을 가진 늙은이 몇 명이 정하는 건 아니다. 후보 역시 수천 명의 오스카 회원들이 1차 투표로 결정한다. 다만 세상이 좀 변했다. 슈퍼히어로 장르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다크 나이트〉의 경지에 도달했다. 물론 같은 기준으로 따지자면 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도 1990년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올랐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때는 소셜미디어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중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요즘 오스카는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다크 나이트〉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 일종의 스캔들이 되자 오스카는 작품상 후보를 열 편으로 늘렸다. 이때부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후보는 다섯 편 정도가 적당하다. 다른 분야 후보 숫자와 맞춰야 한다. 후보작이 다섯 편을 넘으면 사람들은 어떤 영화가 후보작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2021년을 예로 들어보자. 〈노매드랜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맹크〉 〈더 파더〉 〈사운드 오브 메탈〉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프라미싱 영 우먼〉 〈미나리〉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영화는? 이 중 세 작품 정도를 보았다면 당신은 아주 영화를 좋아하는 편일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오스카는 작은 영화, 특히 인디 영화들에 대해 그리 친절한 시상식은 아니었다. 칸이나 베니스처럼 열 명 남짓한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을 선정하는 영화제가 아니다. 수천 명의 영화인이 투표로 선정하는 시상식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영화가 선택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1995년 〈펄프 픽션〉으로 각본상을 받은 뒤 오스카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오늘 제가 받을 유일한 상일 겁니다.” 작품상은 모두가 사랑했던 〈포레스트 검프〉에 돌아갔다.

오스카가 작품성 있는 작은 인디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인디 영화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오스카는 언제나 대중 친화적인 시상식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인디 영화는 인디의 영역에 머물렀다. 더는 그렇지 않다. 인디 영화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디 영화의 ‘스타일’은 상업영화의 영역으로 깊숙하게 치고 들어왔다. 더는 인디와 인디가 아닌 영화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2010년대가 되자 극장의 영역도 변화했다. OTT 영화의 후보 자격을 두고 고민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작은 영화의 작품성에 더욱 신경을 써달라는 요구도 많다. 하여간 소셜미디어가 생긴 이후로는 말 많은 대중의 의견을 들어야 하느냐 마느냐가 모든 분야에서 중요해졌다. 포퓰리즘으로 전 세계 정치가 망가지고 있다고? 그게 정치인들 탓일까? 지금 당장이라도 소셜미디어를 열어보라. 포퓰리즘을 하지 않는 고전적 정치인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모두가 기본적으로는 포퓰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대다.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세상이 나아지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지난 10년간 배웠다.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작품상 수상작을 보자. 〈문라이트〉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그린북〉 〈기생충〉 〈노매드랜드〉 〈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오펜하이머〉 〈아노라〉다. 대중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던 전형적인 오스카용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유일하다. 소수의 사람만 본 훌륭한 영화들이 후보 슬롯을 채우고 상을 받을 때, 그 영화는 주목을 받을지 몰라도 시상식 그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떨어진다. 오스카 역사상 이전 해와 비교해 시상식 시청률이 가장 크게 떨어진 해의 수상작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나는 2017년 작품상 수상작인 〈문라이트〉를 매우 사랑한다. 그러나 그해 작품상은 〈라라랜드〉가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2년 수상작 〈코다〉는 심지어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영화가 됐다. 드니 빌뇌브의 〈듄〉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받았어야 했다. 2023년 수상작으로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보다는 〈탑건: 매버릭〉이 나았을 것이다. 후자가 더 오스카적이라서다. 더 꼰대적으로 오스카적이라서다.

요즘 오스카는 모두의 정치적 의견을 다 취합하며 더는 꼰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한다. 오스카는 그냥 좀 꼰대로 남아도 괜찮다. 지난 역사의 구린 작품상 수상작들을 까는 유튜브를 보는 즐거움은 오스카가 꼰대였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미는 아직 꼰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도저히 높이 평가하고 싶지 않은 케이팝 ‘Golden’과 ‘A.P.T.’에 ‘올해의 노래상’을 주느니, 빌리 아일리시가 2년 전에 발표한 노래에 상을 주는 편을 택한 것이다. 오스카가 그래미처럼 꼰대의 품성을 지켰다면 〈기생충〉에 상을 주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 뭐 어떤가. 〈기생충〉은 ‘부당하게 오스카를 놓친 걸작’ 리스트에 〈브로크백 마운틴〉과 함께하는 영광을 영원히 누렸을 것이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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