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상징이던 스타트업들이 다시 한번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2026년 대한민국 테헤란로와 판교 일대에서는 창업 5~7년 차에 접어든 중견 스타트업들이 기존의 핵심 코드를 과감히 폐기하고, AI를 중심축에 둔 'AI 네이티브' 기업으로 재탄생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단순한 기능 추가 수준으로는 더 이상 시장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
과거의 AI 도입이 기존 서비스 위에 챗봇 하나를 얹는 식의 '화장'에 불과했다면, 2026년의 트렌드는 엔진 자체를 바꾸는 '개조'에 가깝다. 데이터 수집 단계부터 의사결정 구조, 고객 접점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대규모 언어모델(LLM) 기반으로 재설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실제로 최근 시리즈 C 투자를 앞둔 한 물류 스타트업은 지난 3년간 쌓아온 데이터 아키텍처를 전면 백지화했다. 해당 기업 대표는 "과거 방식의 데이터 관리로는 초지능 AI의 성능을 10%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지금 당장의 매출 타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시스템 전체를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기 최적화된 구조로 뜯어고치는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급격한 전환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스타트업 본연의 가치인 '고객 경험의 디테일'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I가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면서 정작 인간 기획자의 직관이나 현장의 목소리가 소외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술 맹신주의가 가져올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벤처캐피털 파트너는 "최근 검토하는 팀들 대다수가 기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정작 그 기술로 누구의 어떤 고통을 해결해 주려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기술은 상향 평준화되는 만큼, 결국 차별화는 AI가 담지 못하는 '인간적 가치'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직 관리 측면에서도 거대한 변화가 목격된다. 수백 명 규모의 비대한 조직 대신, 숙련된 기획자 한 명과 AI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엔지니어 소수가 결합한 '초소형 고효율 팀'이 각광받고 있다. 2026년의 CEO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더 이상 대규모 인력을 관리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AI 자원을 최적의 장소에 배치하고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로서의 역량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오늘의 걸림돌이 되는 시대, 대한민국 스타트업 리더들은 지금 '혁신의 도구'였던 스스로를 다시 혁신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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