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 In Motion
Editor CHOI IN SEON
1920년대, 자유롭게 재즈 클럽을 누비던 당시의 신여성, 플래퍼들은 사회적 억압에 맞서 자신의 몸과 감정을 해방시킬 수단으로 옷을 선택했다. 특히 몸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프린지는 이들의 태도를 가장 생생하게 대변하는 요소였다. 밑단에 달린 프린지는 춤을 추듯 흔들렸고, 그 움직임은 곧 입은 사람의 감정을 시각화했다. 그리고 2026
S/S 시즌, 새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프린지를 통해 다시금 감정을 직조하며 과거 플래퍼의 스피릿을 소환했다. 입는 이의 리듬에 따라 진동하는 프린지는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펼친 감각적 실험에 가장 적절한 도구였다. 발렌시아가와 보테가 베네타는 정교한 프린지 스커트를 담백한 톱과 매치해 절제된 무드를 표현했고, 맥퀸과 아레아는 전신을 컬러풀한 메탈릭 프린지로 풍성하게 덮어 내면의 에너지를 거침없이 발산했다. 그 진폭은 샤넬의 피날레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모델 아와르 오디앙(Awar Odhiang)이 환한 미소로 그랑 팔레를 누비며 춤추던 순간. 관객은 옷이 아닌 그 안의 공기를 마주했고, 묘한 해방감을 함께 느꼈다. 패션이 정서를 전달하는 매개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한 세기 전, 옷 끝자락에 매달려 있던 해방의 제스처가 오늘의 런웨이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올봄은 프린지를 따라 내면의 리듬에 몸을 맡길 때다.
Spectrum of Bloom
Editor LEE DA EUN
“꽃무늬? 봄에? 참신하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가 냉소적으로 내뱉은 이 한마디를 기억하는가. 패션계에서 ‘봄=플라워’라는 공식이 얼마나 뻔한지를 꼬집는 대사로 20년 가까이 회자된 것이 사실. 하지만 꽃이 심어주는 판타지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사랑은 멈출 수 없었고, 2026 S/ S 컬렉션 역시 플라워 트렌드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각 패션 하우스가 자신들만의 언어로 플라워를 재해석했다는 것.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1980년대 플라워 패턴의 귀환이다. 끌로에와 셀린느는 색대비가 선명한 레트로풍의 플라워 패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1980년대 쿨 걸 무드 특유의 볼드한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그 반면에 미우미우는 앞치마 실루엣과 잔 꽃무늬로 여성 노동자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냈고, 시몬 로샤는 실루엣이 해체된 들꽃 패턴 드레스를 입은 불완전한 소녀들의 무도회를 연출했다. 한편 샤넬은 꽃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장인정신이 깃든 쿠튀르 터치를 가미해 부드러움과 대담함을 동시에 품은 여성성의 정점을 보여주며 플라워 트렌드에 힘을 보탰다. 이처럼 이번 시즌 플라워 트렌드는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꽃이라도 다채롭게 재해석되며 하나의 거대한 스펙트럼으로 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답을 찾기보다 선택의 자유를 기꺼이 즐기면 된다. 오늘은 대담한 꽃 한 송이를 귀에 꽂은 1980년대 신여성으로, 내일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들꽃 한 다발을 든 소녀로 말이다.
A New Low
Editor JEONG PYEONG HWA
돌고 도는 패션 월드의 유행 주기는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허리선이 위로 한껏 올라간 하이웨이스트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불과 2년 전의 일. 하지만 올봄 우리는 다시금 밑도 끝도 없이 내려간 허리선의 흥미로운 변화를 목도하고야 만다. 잘록한 허리와 골반이 드러나는 아찔한 위치에 걸쳐 있는 로라이즈 스커트가 2026 S/S 컬렉션에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로라이즈 스커트 = 아랫배 노출’이라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한 동시에 유효하지 않은 양상을 띤다. 리 알렉산더 맥퀸이 1990년대에 선보인 범스터(bumster) 스타일을 다채롭게 재해석한 맥퀸과 미니멀한 블랩 크롭트 톱에 로라이즈 벌룬 스커트를 매치한 발렌시아가가 과감한 노출을 감행했다면, 샤넬과 미우미우, 토즈, 빅토리아 베컴은 보다 일상에 초점을 맞춘 로라이즈 스커트 스타일링으로 노출을 최소화한 것. 이들은 허리선을 낮추는 대신 스커트 길이는 늘이고, 세심하게 완성한 니트 스웨터, 블라우스, 셔츠, 재킷, 코트 같은 일상적인 아이템을 매치해 우아한 한 끗의 변주를 선사한다. 올봄 꼭 도전하고 싶은 로라이즈 스커트지만 허리가 긴 체형을 가진 동양인은 보다 영민한 접근이 필요할 터. 몸매 비율 걱정 없이 이 매력적인 트렌드를 즐기고 싶다면 샤넬과 생 로랑 등에서 포착된 굽이 높은 펌프스와 슬링백을 눈여겨보길! 로라이즈 스커트에 새 시즌 하이힐의 감각적인 조우! 이제 봄의 중심을 향해 여유롭고 우아한 발걸음을 내디딜 시간이다.
Color Match Point
Editor SHIN YE RIM
컬러 블록은 시즌리스 트렌드지만, 이번에는 결이 다르다. 단순히 여러 색을 매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원색을 맞붙여 강렬한 대비를 보여줬기 때문. 발렌티노의 블루 러플 블라우스와 옐로 팬츠, 프라다의 레드 셔츠와 퍼플 쇼츠의 조합처럼 말이다. 이 과감한 컬러 블록의 핵심은 실루엣과 디테일은 최대한 절제하고, 오직 색과 색이 부딪으며 이루는 대담한 대비를 도드라지게 하는 데 있다. 이 트렌드가 화두가 된 또 다른 이유는 하우스의 새 수장들이 이를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할 전략적 도구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로에베의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 듀오는 다이빙 수트를 닮은 재킷에 스페인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옐로와 레드를 더했고, 베르사체의 다리오 비탈레는 하우스 특유의 에너지를 퍼플, 레드, 블루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풀어냈다. 질샌더의 시모네 벨로티 역시 레드와 블루를 하우스의 절제된 미학 속에 담아내며 뉴 디렉터로서 갖춰야 할 영민함을 증명했다. 원색의 만남은 별다른 장식 없이도 옷의 구조와 실루엣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시각적 자극을 넘어 보는 이에게 심리적 카타르시스까지 선사한다. 일상생활에서 원색 아이템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이 다소 생경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컬러 조합이 이뤄내는 의외의 조화는 그 어떤 액세서리보다 파워풀하다.이제 이 대담한 컬러 매치를 즐길 차례다.
Beloved Gloves
Editor KIM JI SU
계절이라는 경계는 점차 하이패션의 세계에서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S/S 시즌 런웨이에 무통 코트가 등장하거나, F/W 트렌드로 종잇장처럼 얇은 란제리 룩이 거론되는 상황도 더 이상 낯설지 않으니 말이다. 새 시즌 화두로 떠오른 롱 글러브의 변주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부상했다. 뛰어난 보온성이라는 정체성을 입고 줄곧 실용주의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온 장갑이 새 시즌 그 계절성을 벗고 오로지 장식적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다. ‘장갑 = 겨울의 전유물’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전복하기 위해 유수의 하우스는 18세기 드레스 글러브의 문법을 차용했다. 사실 산업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장갑은 계절과 관계없이 귀족 여성의 상징처럼 자리하며 패션의 계급도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했는데, 오직 심미성에만 초점을 맞추던 이 시대의 스타일링 기조를 통해 장갑을 당시와 같은 비계절적 아이템으로 부활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코르셋 드레스에 시어한 장갑을 매치한 아크네 스튜디오, 페티코트가 연상되는 고전적인 드레스와 힙한 스팽글 장갑을 조합한 시몬 로샤, 18세기를 풍미한 레그오브머튼 슬리브의 시어링 코트와 가죽 장갑을 함께 선보인 구찌의 컬렉션은 이러한 의도를 명료하게 뒷받침하는 예다. 그 반면 프라다는 심미주의라는 규칙을 따르되 브라톱 특유의 현대적 분위기를 통해 모던한 글러브 룩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했다. 현실적이라고 평하기엔 여전히 무리가 있지만,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패션 사이를 잇는 응용법으로 참고하기에는 충분하다. 이렇듯 오늘날의 글러브 트렌드는 젠더리스와 에이지리스, 그리고 시즌리스로 이어지는 패션계의 ‘경계 없음’ 담론 중 시즌리스 파트에 스타일리시한 방식으로 힘을 보탠다. 이토록 불편한 유행을 납득할 이가 과연 있을까마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션 인사이더라면 한 번쯤 티셔츠에 튈 장갑을 더하는 정도의 타협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옷장 안에서 오직 겨울만을 기다리던 장갑을 봄으로 불러들이려는 이 한 번의 시도가, 사물에 새로운 쓸모와 가능성을 부여하는 즐거움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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