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한민하 기자] 국내 패션 시장의 양극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기존의 고가 전략에서 벗어나 가격 문턱을 낮추는 포지셔닝 재편에 나서고 있다.
SPA 브랜드의 가격 상승과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격 인하가 맞물리며 중간 가격대 시장의 판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양상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패션 시장에서는 SPA 브랜드의 가격 상향과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격 조정이 동시에 진행되며 중간 가격대 경계가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
SPA는 협업과 라인 확장을 통해 상품 가치를 끌어올리는 한편 디자이너 브랜드는 플랫폼 중심 판매 구조에 대응해 프로모션 참여를 확대하고 기본 아이템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성을 높이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중저가와 중고가 사이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뚜렷해진 소비 양극화를 지목한다. 초저가 브랜드와 글로벌 명품 중심 소비가 강화될수록 중간 가격대 소비자는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차별화된 제품을 찾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것이다.
브랜드들 역시 이 수요를 겨냥해 가격 자체보다는 ‘어떤 가치를 프리미엄으로 제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중간 시장의 기준을 다시 설정하는 양상이 본격화됐다는 풀이다.
이 같은 흐름은 SPA 전략 변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근 SPA 브랜드들은 과거의 가성비 중심 이미지에서 벗어나 협업과 기술 고도화를 통한 차별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니클로는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확대하며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브랜드는 IP 협업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가격대를 상향하더라도 협업과 소재, 라인업 확장을 통해 ‘합리적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SPA 브랜드들이 가격 경쟁에만 매달리기보다는 협업이나 소재 기술 향상 등을 통해 차별성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가격에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포지셔닝을 옮기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SPA가 가격 중심 전략에서 한발 벗어나 차별성 확보에 방점을 찍으면서 시장 전반의 가격 기준선도 점진적으로 상향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디자이너 브랜드는 가격 전략의 유연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희소성과 실험적 디자인을 앞세워 중고가 포지션을 유지해온 브랜드들까지 기본 아이템 중심의 가격 인하와 프로모션 확대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론칭 단계부터 중저가 가격대를 설정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도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판매 구조가 트래픽과 전환율 중심으로 재편된 점이 변화를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알고리즘 노출과 전환율이 매출을 좌우하는 환경에서는 ‘희소성’보다 ‘회전율’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에 가격·상품 구성·프로모션을 동시에 조정하는 전략이 불가피해졌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러한 전략 전환이 중장기적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본 아이템 비중 확대와 상시 프로모션 구조가 고착될 경우 실험성과 서사를 기반으로 차별화해온 디자이너 브랜드가 대중화 경쟁 속에 흡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가격 문턱을 낮추는 선택이 단기적으로는 판매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희석이라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처럼 SPA의 상향 전략과 디자이너 브랜드의 하향 조정이 맞물리면서 중간 가격대는 더 이상 틈새가 아닌 주요 경쟁 구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 양극화가 이어지는 한 ‘합리적 프리미엄’을 찾는 수요는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변수는 유통 구조다. 플랫폼 중심 판매가 강화될수록 할인과 프로모션 경쟁이 상시화될 수 있고, 이는 중간 시장을 다시 가격 경쟁 국면으로 밀어 넣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번 재편이 브랜드 가치 경쟁으로 이어질지, 또 다른 가격 중심 경쟁으로 귀결될지는 향후 패션 시장의 수익 구조를 가늠할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간 가격대 브랜드들이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다”며 “가격 전략 조정과 상품 재편, 협업 확대 등 여러 방식을 통해 생존 전략을 재설계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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