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럼 많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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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럼 많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오해

나만아는상담소 2026-02-25 14:18:19 신고

쑥스럼 많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오해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인 시끌벅적한 술자리. 그가 당신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 남들처럼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그저 빈 잔에 조용히 물을 채워주거나 테이블 위의 수저를 챙긴다.

친구들이 남자친구가 참 다정하고 조용하다고 거들면 그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옅게 웃는다. 당신은 세심하게 자신만 챙기는 모습에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요란한 세상 속에서 나만 바라보는 평온한 안식처를 찾은 기분이 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로등 밑에서 그가 나지막하게 입을 뗀다.

  • - “난 원래 사람 많은 데 가면 기가 빨리는데, 네가 즐거워하니까 참은 거야.”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진다. 이 사람 나 때문에 억지로 불편한 자리를 견뎠구나. 고마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밀려온다. 다음부터는 친구들 모임에 이 사람을 데려가지 말아야겠다고, 아니 아예 모임 자체를 줄여야겠다고 다짐한다.

관계의 주도권이 조용히 넘어가는 순간이다.

조용한 미소 뒤에 숨은 꼿꼿한 우월감

내현성 나르시시스트는 흔히 수줍고 내향적인 사람으로 포장되어 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거절도 잘 못하며,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한없이 순하고 다정한 사람에 가깝다.

이들의 침묵은 수줍음이 아니다. 꼿꼿한 우월감이다. 속으로 끊임없이 타인을 평가하고 깎아내린다. 굳이 섞이기엔 저들이 너무 천박하거나 수준이 낮다고 여긴다.

  • -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시끄럽게 자기 자랑만 한대? 난 조용히 너랑만 얘기하고 싶어.”

단둘이 남았을 때 은근슬쩍 내뱉는 말이다. 속내는 전혀 다정하지 않다. ‘나는 저런 우스운 인간들과 급이 다르고, 너는 그런 내 곁에서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서늘한 통제다.

이 말을 들은 당신은 서서히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의 시선에 동화되어 멀쩡했던 친구들의 단점을 찾아내고 둘만의 좁은 세계로 빠져든다.

그가 원하던 바다. 주변 사람들을 끊어내고 오직 자신만 바라보게 만드는 것. 조용하고 다정한 미소 뒤에서 완벽하게 당신의 일상을 고립시키고 있다.

물먹은 솜이불처럼 숨통을 조여오는 다정함

그의 다정함은 유별난 데가 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까지 굳이 나서서 해주려 한다. 처음에는 나를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다며 감동한다.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고 세세한 일정까지 확인하는 연락이 애정이라고 굳게 믿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몸이 무거워진다. 혼자서 자유롭게 결정하던 일상적인 일들조차 그의 눈치를 보게 된다.

  • - “내가 다 해줄 텐데 넌 왜 굳이 혼자 하려고 해? 내가 못 미더워서 그래?”

작은 독립성을 보일 때 서운한 표정으로 던지는 말이다. 걱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독한 족쇄다. ‘네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야 내가 너를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는 음침한 의도가 깔려 있다.

이들의 다정함은 덮을수록 무거워지는 물먹은 솜이불과 같다. 처음 덮었을 때는 바깥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것 같지만, 점점 눅눅한 습기를 머금으며 온몸을 짓누른다.

나중에는 제힘으로 이불을 걷어낼 기력조차 사라진다. 당신은 다정함이라는 핑계 아래 손발이 묶인 채 서서히 말라간다. 그가 없으면 일상생활조차 버거워지는 무기력증에 빠져버린다.

갈등을 지워버리고 원망만 남기는 화법

진짜 문제는 갈등이 생겼을 때 드러난다. 건강한 관계라면 서로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그는 싸움 자체를 회피한다. 꾹꾹 눌러 담았던 서운함을 토로하면, 화를 내는 대신 바닥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쉰다.

  • -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조심할게. 내가 부족해서 그래. 미안해.”

말문이 막힌다. 이 사과의 진짜 의미를 직감적으로 알아채기 때문이다. ‘나는 상처받았고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으니, 네가 나쁜 사람이 되기 싫으면 여기서 입을 다물어라’라는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다.

속이 타들어 간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데 화를 낼 대상이 사라져버렸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다. 결국 스스로 화를 식히고 오히려 그를 달래는 처지가 된다.

미안해, 내가 말이 좀 심했지. 나도 모르게 사과를 뱉고 나면 관계의 찌꺼기만 입안에 쓰게 남는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매번 예민하고 모진 사람이 되어버린다.

수줍은 가면을 찢고 문을 나설 시간

조용하고 다정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적이지 않은 게 아니다. 침묵과 회피, 은근한 고립과 과잉보호는 폭언보다 교묘하게 영혼을 갉아먹는다.

소극적인 태도 뒤에 숨어 상대방을 조종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눈치를 보며 엎드리게 만든다. 다정한 사람을 만난 게 아니라 음침하게 통제하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힌 것뿐이다.

그 물먹은 솜이불을 걷어차야 한다. 혼자 두면 밥도 안 챙겨 먹고 외로워할 것 같다는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는 게 낫다. 당신이 떠나도 금세 다른 사람을 찾아 다정함을 빙자한 통제를 시작할 사람들이다.

수줍게 웃으며 족쇄를 채우는 그 사람 곁에서 더 이상 질식할 필요 없다.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숨통이 트이는 바깥으로 걸어 나오면 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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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진 소장 저 | 북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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