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수능 이후 텅 빈 시간, 고3에게 필요한 건 휴식만이 아니다
수능이 끝난 뒤 고3 교실을 보면 묘한 공기가 흐른다. 지난해 수능을 치른 딸을 보면서 그걸 새삼 확인했다. 시험이 끝나자 딸은 학교에 잘 나가지 않았고, 학교에 가더라도 "별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냈다"고 말했다. 교실은 비어 가고, 남아 있는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때웠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능 준비로 몇 년을 버텨온 아이들 아닌가. 잠깐은 쉬어야 한다고도 여겼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시기가 그저 '휴식기'로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내는 마지막 몇 주, 말 그대로 공교육이 책임질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우리는 사실상 비워 둔 채 통과시키고 있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고3 2학기 전체가 아니다. 수능 직후부터 정시 지원과 합격 발표, 추가 합격 등 대학 입시 일정이 이어지는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입시가 아이들 삶의 중심이 된다. 이 시기까지 "왜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안 돌리느냐"고만 말하는 건 현실을 모르는 소리일 수 있다. 내가 특히 아쉽게 보는 구간은, 주요 대입 절차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서 졸업식 사이의 짧은 시간이다. 이때는 입시 압박이 확 줄어든다. 그렇다고 새 학기를 준비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공백기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여러 기사에서 '수능 전후 고3 교실 공동화'가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걸 떠올려 보면 이 공백의 존재는 이제 낯선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이야말로 입시 중심 교육에서 잠시 비켜나,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다. 시험과 입시가 거의 끝났다는 이유로 이 시간 전체를 공백으로 남겨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청년들이 노동시장과 금융 환경, 빠르게 변하는 기술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던져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최근 정부는 청소년 금융 이해력을 키우겠다며 2026년 고2부터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과목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융합 선택과목으로 편성해 학생부 수시 전형에만 반영되는 절대평가 과목이 될 거라고 한다. 취지 자체는 반갑다. 다만 시기와 방식은 아쉽다. 2026년부터라면 그 이전에 졸업하는 아이들은 그대로 "시행 이전 세대"로 남는다. 청년층의 빚과 투자 실패, 각종 금융사기가 사회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올해와 내년에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는 정규 교육과정 차원의 뚜렷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선택과목이라는 점도 고민스럽다. 관심 있고 시간 되는 학생만 듣는 과목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과목 신설은 평소 정규 교육과정 속 이야기일 뿐 수능 이후와 졸업 사이에 비어 있는 시간을 채우기 위한 대답은 아니다.
나는 수능 이후, 더 정확히 말하면 주요 대학 입시 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부터 졸업식까지의 짧은 시간을 아예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시기를 '대학 입시의 잔여기간'이 아니라 '사회 진입 준비 기간'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먼저다. 그 안에 어떤 내용을 채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최소한 몇 가지는 쉽게 합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노동 교육이다. 아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알바를 하거나 취업·인턴·현장실습 등을 통해 노동 현장을 바로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근로계약서가 무엇인지,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4대 보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거의 배우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임금 체불,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당한 줄도 모르는' 일이 반복된다. 일부 직업계고에서 노동인권이나 산업안전 관련 과목이 개설되긴 하지만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수능 이후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 시기에야말로 이런 기본을 정리해 줄 기회다.
둘째는 세무 교육이다. 첫 월급을 받아 보고 "생각보다 돈이 적게 들어왔다"고 놀라는 젊은이들은 적지 않다. 급여 명세서의 각종 공제 항목이 무엇인지, 프리랜서나 과외 소득에서 왜 3.3%를 떼는지, 연말정산이 어떤 의미인지,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이 어떻게 부과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금은 나중에 천천히 알면 된다는 말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에 이런 기본 개념과 실제 사례를 학교에서 한 번이라도 짚어 준다면 적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맞는 첫 충격"은 줄일 수 있다.
셋째는 금융과 소비 교육이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차이, 학자금 대출과 각종 대출 상품의 구조, 신용점수와 연체의 위험, 피해야 할 금융사기의 전형적인 패턴 등은 모두 20대 초반에 바로 맞닥뜨리는 문제들이다. 돈을 "쓰는 법"만 배우고 "관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가면 빚과 불안이 그 빈 곳을 메우기 쉽다. 금융당국 역시 조사와 설문을 통해 20대 이하와 일부 계층의 금융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보고 청년층 대상 금융교육 확대를 말해 왔다. 이런 흐름을 생각하면 수능 이후 고3을 위한 금융·소비 교육은 새로운 의제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이미 필요성이 확인된 과제를 "현장 시간표 위에 올려놓자"는 제안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AI 리터러시 교육이 있다. 이미 많은 학생이 과제, 번역, 이미지 제작 등을 위해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 활용인지, AI가 만들어 내는 정보가 왜 위험할 수 있는지, 딥페이크나 조작된 이미지와 영상에 어떻게 속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거의 없다. 기술은 아이들을 앞질러 달리고, 학교는 "사용을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 고민에 머무르는 느낌이다. 수능과 대입이라는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시기야말로 이런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활용할지 차분히 다룰 수 있는 때다.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수시 합격과 정시 모집, 등록, 추가 합격 등 주요 대학 입시 일정은 대체로 1월 중순에서 2월 초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에는 아이들 마음이 온통 결과와 일정에 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을 입시 일정과 병행하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입시 일정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예를 들어 정시 등록 마감 이후부터 졸업식 전까지 1~2주 정도를 정해 집중적으로 운영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이때만큼은 아이들이 입시 걱정에서 잠시 벗어난 상태에서 "그다음 단계"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그저 "출석률이 떨어지니 대책이 필요하다"는 행정의 언어로만 다루지 않는 일이다. 수능 이후와 졸업 사이의 공백은 출석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아이들의 마지막 학교 시간에 담을 것인가 하는 교육 철학의 문제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각 학교와 교육 당국이 함께 논의해 주요 대입 일정이 정리된 뒤부터 졸업 전까지를 '고3 필수 시민·사회초년생 교육 기간'으로 공식화하자. 노동, 세금, 금융, AI 리터러시를 핵심 축으로 삼아 학교 여건에 맞게 1~2주 정도의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새로운 교과서를 기다릴 필요도, 거창한 제도 개편을 논의할 필요도 없다. 이미 여러 기관과 단체가 만들어 둔 교육 자료와 현장 전문가들을 엮어 지금 있는 시간과 공간부터 바꾸면 된다.
아이들의 인생은 교육과정 시행 시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올해 졸업하는 아이들, 내년에 졸업하는 아이들 역시 곧바로 노동시장과 금융 환경, 기술 변화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2026년 고2부터"라는 문장 뒤에 숨지 말고 지금 교실에 앉아 있는 고3들부터 우리가 어른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수능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이 시간을 더 이상 '텅 빈 시간'으로 남겨 두지 말자는 주장, 어쩌면 지금 한국 교육이 가장 먼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일지 모른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현 AI경영학회 상임이사 겸 학술분과 위원장 ▲ ㈜컴팩 CIO ▲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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