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동 독립서점 ‘큰새’는 ‘짐이라도 맡기고 가세요’라는 입간판이 눈에 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 길목엔 ‘손이라도 닦고 가세요’, ‘커피라도 마시고 가세요’ 등 이 공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머물러주길 바라는 서점 대표 이정식씨와 총괄 디렉터 김미래씨의 소망이 담겨있다.
‘~라도 하고 가세요’라는 문구는 책을 사지 않아도 괜찮고,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멍하니 있다 가도 괜찮다는 일종의 허락 같은 말이다. 이 공간에서는 무언가를 꼭 성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2024년 12월 문을 연 큰새는 각자가 버티고 싶은 방식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시작됐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게 되는 행궁동의 분위기처럼 관광지이자 일상을 사람들의 삶이 공존하는 곳에 책방이 숨쉬는 자리 잡을 수 있을거라고 판단했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큰 변화보다는 작은 축적을 반복하며 이어가고 있다”며 “책을 고르고 사람을 만나고 질문하며 하루하루 쌓아온 시간이 큰새의 기록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김 디렉터는 “책이 꼭 읽혀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전한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표지만 오래 바라보다 가거나, 서점에 머물며 가만히 있는 그런 태도들이 모여 큰새를 이룬다.
큰새의 큐레이션 기준은 단순하다. ‘지금 이 공간에서 이 책을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은가’, 그리고 ‘이 책이 누군가의 하루에 말을 걸 수 있는가’를 고려한다. 베스트셀러보다는 독립출판물이나 작은 출판사의 책이 많은 편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야기보다는 오래 곁에 두고 다시 펼칠 수 있는 책을 주로 소개하고 감정, 삶, 관계, 질문에 관한 책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지는 편이다.
큰새에서는 독서모임, 작가와의 대화, 음악이 함께하는 자리, 감정 질문지를 중심으로 한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크지 않은 규모에 서로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면 충분하다고 여기며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지금의 태도를 오래 유지하는 공간이 되고 싶다”며 “방향을 정하기보단 여지를 남겨두는 곳으로 남겠다. 찾아주시는 분들 덕에 이 공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묵묵히 문을 열어두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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