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이 약간 자랑 섞인 이미지의 ‘쇼윈도’라면, 스레드는 가공되지 않은 말이 부딪히는 소란한 ‘백스테이지’다. 얼마 전 스레드에 사진 한 장을 올렸는데 순식간에 댓글이 600개 넘게 달렸다. ‘출산 후 셀룰라이트 부자였던 내 배’, ‘짜장면 곱빼기에 탕수육 먹고 누워 있는 내 배’ 등의 자학적 변주부터 ‘누가 허락도 없이 내 배 본떴어? 소장 보낸다!’는 귀여운 으름장까지 와글와글했던 댓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난가…?’였다. 간혹 ‘내 고향’,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수준 있는 답변도 있었지만, 의지박약의 증거이자 출산 흔적으로 해석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언뜻 보면 달항아리 같지만, 자세히 보면 살항아리다. ‘어머니의 배’는 작가 이유진이 노모의 배를 라이프 캐스팅한 작품이다. 라이프 캐스팅은 살아 있는 사람의 신체에 실리콘이나 석고 등을 발라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재료를 부어 똑같이 복제하는 조소 기법인데, 신체의 굴곡, 솜털, 주름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지기에 실존감이 강력하다. 캐스팅 과정에는 인내심 있는 포즈가 필수지만, 급작스러운 큰 수술로 무려 12kg이나 빠져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팔십 넘은 어머니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술 회복 후 처음으로 엄마에게 다시 모델을 해주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당신 몸이 너무 흉해졌다고, 이런 몸을 떠서 뭐하냐고 걱정하셨어요. 엄마는 이전에 모델을 서실 때는 아무 부끄럼 없이 벗은 몸을 보여주며 다양한 포즈를 저와 의논하셨거든요. 나중엔 작업 과정까지 지시할 정도로 잔소리가 많으셔서 제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했죠. 그런데 이번 작업을 할 때는 엄마 배에 베이비 오일을 바르면서 뱃살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살이 더 빠져 건조하고 탄력을 잃은 채 비대칭으로 처진 엄마의 배를 만지다 보니 무심하게 일그러진 달항아리가 떠올랐습니다. 젊음의 자양분을 우리에게 다 주시고 텅 빈 배 항아리. ‘네 작업에 도움이 된다니, 내가 오래오래 몸을 떠주고 돕다 가야지’라고 말씀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이젠 껍데기까지 다 주고 가시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리기도 했습니다. 엄마라는 생명체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측은함과 제 이기적인 마음이 대비됐거든요.” 어머니가 피곤하지 않게 모델을 서게 하는 방법은 날 때부터 돌봐주신 손자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꼼꼼히 석고를 바르는 딸에게 작가의 어머니는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 배를 좋아하니…?”
사람들의 반응도 좋고, 작업도 소장됐다는 말에 “내 배가 특별하지!”라며 기뻐했다는 어머니. 작가는 그런 어머니의 손도 석고로 뜬 뒤 검버섯이 난 자리마다 큐빅 지르코니아를 은으로 만든 난발에 프롱 세팅(prong setting) 기법으로 박아 넣었다. 비록 비용 때문에 큐빅을 썼지만, 타인을 품고 생산해내는 모성적 신체의 가능성이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
우리 모두 어머니라는 항아리에서 나왔다. 우리가 만진 최초의 달, 어머니의 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준 작품 덕분에 헬스클럽부터 등록하고 본 상투적인 3월의 시작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3월의 땅을 닮았던 아득한 기억 속 어머니의 배를 떠올려본다. 매끈한 몸을 만들기 위해 조바심 내기보다는 내 몸에 새겨진 고귀한 흔적부터 기꺼이 긍정해본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머니의 생애 역작이므로.
Copyright ⓒ 노블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