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업계 1위라는 제주항공의 왕관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5년 4분기 실적에서 5분기 만에 18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이라는 타이틀을 걸었지만,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11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연간 영업손실, 역성장한 매출, 그리고 유동성 압박이라는 '삼중고'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경쟁사들이 인수합병(M&A)과 장거리 노선 진출로 체급을 키우는 사이, 제주항공이 '단거리·단일 기종'이라는 기존 성공 방정식에 매몰되어 도태될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25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제주항공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1조5799억 원으로 전년(1조9358억원) 대비 무려 18.38% 급감했다. 외형 축소는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2024년 799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25년 영업손실 1109억원으로 고꾸라지며 적자 전환했다.
이는 단순히 시장 환경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제주항공의 지난해 총 탑승객은 1223만명으로 전년(1334만명) 대비 8.34% 감소했고, 운항 횟수 역시 6.57% 줄어든 7만 5360편에 그쳤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폭발했던 이연 수요(펜트업 효과)가 잦아들자 시장 파이 축소의 직격탄을 가장 뼈아프게 맞은 것이다.
회사 측은 올 1월 수송객 수가 117만6000여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5% 증가했다며 2026년 1분기 실적 개선을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가의 분석은 다르다. 4분기 흑자 역시 비용 절감과 일본 노선 쏠림(비중 약 42%)에 기댄 단기적 처방일 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엔저 현상이 꺾이거나 지진 등 돌발 변수가 발생할 경우, 수익 구조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장기 성장 동력의 부재다. 국내 항공 시장은 현재 거대한 지각 변동의 한복판에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마무리가 가시화되면서, 다가오는 2027년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을 통합한 '메가 LCC'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통합 진에어는 단숨에 항공기 50~60대 규모를 확보하며 단일 LCC 기준 최대 네트워크를 갖추게 된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거대 공룡의 탄생은 제주항공의 1위 지위를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경쟁사인 티웨이항공은 이미 대한항공으로부터 이관받은 유럽 노선을 바탕으로 장거리 특화 LCC로 체급을 완전히 바꿨다. 반면 제주항공은 여전히 보잉 B737-8 단일 기종 중심의 중단거리 노선 효율화만 외치고 있다. 회사 측은 '단일 기종 운영이 위기 상황에서 회복 탄력성을 높인다'고 강변하지만, 시장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식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장거리 노선 진출 기회를 놓친 채, 이미 출혈 경쟁이 극에 달한 일본 및 동남아 노선에서 1만원, 2만원의 운임을 깎는 진흙탕 싸움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유동성 압박은 제주항공의 숨통을 조이는 또 다른 뇌관이다. 제주항공은 임대료 절감과 연료 효율 개선을 명분으로 차세대 항공기인 B737-8 직접 구매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6대를 도입한 데 이어, 올해 2026년에도 7대를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다.
문제는 자금력이다. 1100억원대 막대한 영업 적자를 낸 상황에서 2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자본 지출(Capex)이 강행되다 보니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의 2026년 잉여현금흐름(FCF)은 마이너스(-) 1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현금이 메마르다 보니 제주항공은 IT 자회사인 'AK아이에스' 매각은 물론, 소유 기재인 B737-8 항공기 3대를 처분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을 줄이겠다며 비행기를 샀다가, 돈이 부족해 다시 비행기를 팔아야 하는 촌극이 벌어질 판이다. 알짜 자회사와 핵심 자산 매각은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제 살 깎아먹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제주항공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원가 절감이라는 수비형 전략만으로는 거대 메가 LCC의 공세와 장거리 노선 강자들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며 "4분기의 소폭 흑자에 샴페인을 터뜨릴 여유는 없다. 단거리 저가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여객 수요 다변화와 화물 사업 확대 등 근본적인 비즈니스 모델(BM)의 혁신을 이뤄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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