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유니버설 픽쳐스
[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극장가가 ‘고전의 향취’로 물들고 있다. 오래된 문학 서사들이 유명 감독들의 파격적인 시선과 만나 주류 관객까지 끌어들이며 영화 시장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런 흐름을 방증하는 작품은 11일 개봉한 ‘폭풍의 언덕’이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신분이 다른 남녀의 지독한 사랑과 집착을 그린 에밀리 브론테의 고전 소설을 기반으로, 원작의 고전미를 전복하는 파격적 미장센으로 개봉 첫 주부터 각종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고 로비와 제이콥 엘로디라는 화려한 캐스팅을 무기로, 원작의 거친 에너지를 현대적인 관능미로 치환했다는 평가를 얻는다.
연출을 맡은 에머랄드 펜넬 감독은 원작의 황량함 대신 도파민 넘치는 전개와 팝스타 찰리 XCX가 참여한 감각적인 OST 등을 덧입혀 고전을 ‘힙한’ 복수극으로 탈바꿈시켰고, 젊은 관객층의 호응을 얻는 데도 성공했다.
25일 개봉하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햄넷’ 역시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위대함 뒤에 가려져 있던 아들 햄넷의 죽음, 그 슬픔을 딛고 탄생한 걸작 ‘햄릿’의 창작 과정을 조명한다.
‘햄넷’은 “상실을 예술로 승화시킨 마스터피스”라는 평단의 격찬과 함께 다가오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일찌감치 영화 마니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고전이 끊임없이 스크린으로 재소환되는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원형적 감정의 힘’과 ‘안전한 서사의 변주’를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욕망, 사랑, 죽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루는 고전은 강력한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폭풍의 언덕’이 보여주는 파괴적인 집착과 ‘햄넷’이 파고드는 상실감이 이에 부합된다.
또한 고전은 검증된 서사를 바탕으로 감독의 개성을 마음껏 투영할 수 있는 훌륭한 캔버스가 된다는 점도 영화로 재조명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펜넬과 자오처럼 확고한 세계관을 지닌 감독들은 고전을 단순한 재연의 대상이 아닌, 젠더 의식의 전복과 예술적 승화 등 현대적 가치관을 덧입혀 동시대적 질문을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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