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은행권의 전방위적 가계대출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민들의 마지막 급전 창구로 불리는 카드론 시장에서 부채 구조의 변화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전체 카드론 잔액은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완만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기존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다시 대출로 상환하는 ‘대환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수요 확대가 아니라, 고금리 환경 속 취약 차주들이 상환 여력을 소진한 채 부실을 미래로 이연하는 단계에 진입한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24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9개 전업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42조5850억원으로 전월 대비 0.6% 증가했다. 지난해 말 일시 감소 이후 반등했지만, 과거 급증기와 비교하면 외형상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세부 항목에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상환이 어려운 차주가 만기를 연장하거나 재대출을 받는 대환대출 잔액은 한 달 새 6.0% 급증했다. 이는 전체 카드론 증가율의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규 차입이 시장을 키운다기보다, 기존 채무를 정리하지 못한 차주들이 다시 빚을 돌려막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능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됐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리볼빙서 대환대출로…고착화되는 ‘빚의 사슬’
업계에서는 취약 차주의 부채 대응 방식이 점차 악화되는 경로에 주목하고 있다. 일시적인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결제 대금을 이월하는 리볼빙(결제성 이월) 서비스에 의존하다가, 누적된 원리금이 임계치에 다다르면 금리가 더 높은 대환대출로 전환하는 구조적 고착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결제성 리볼빙 잔액은 6조7194억원으로 여전히 역대급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리볼빙 잔액이 줄지 않는 가운데 대환대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차주들이 소득을 통한 상환보다는 금융 상품 간의 이동을 통해 간신히 연체를 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대환대출로 전환된 채권이 ‘정상’으로 분류되면서 당장의 연체율 수치를 낮추는 착시 효과를 누리지만, 결국 부실의 총량을 키우며 금융 시스템의 잠재적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다.
1금융권 규제의 그늘과 ‘풍선효과’의 역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은행권 대출 문턱 상향이 자리하고 있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위한 정책이지만, 결과적으로 취약 차주를 더 높은 금리의 제2금융권으로 밀어내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부채의 ‘질적 악화’ 단계로 보고 있다. 채상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권 대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자금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불가피하다”며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되면서 상환 여력이 약한 차주들이 대환대출을 통해 버티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수도권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대환대출은 통계상 정상채권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연체율이 안정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부실을 잠시 뒤로 미루는 효과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며 “단순히 잔액만 보기보다 연명자금으로 변한 부채의 성격을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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