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 곽도성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 = 지난해 11월, 당시 쿠팡 한국법인 대표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정부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사태가 조속히 진정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과 이후 현재까지 쿠팡이 보여준 대응은 이번 사태의 피해자인 소비자들에게 깊은 실망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
특히 쿠팡이 지난 1월 15일부터 제공하기 시작한 ‘구매이용권’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책임의 이행이라기보다, 이탈 가능성이 커진 소비자들을 쿠팡의 플랫폼 생태계 안에 붙잡아 두기 위한 ‘조건부 혜택’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쿠팡은 자체 ‘조사’를 근거로 분류한 ‘일부’ 소비자에게만 1인당 5만 원 상당의 ‘구매이용권’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조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자의적 판단으로 제공 대상을 선별한 쿠팡의 행태는 합리적인 설명 없이 대상에서 제외된 소비자들의 불안과 반발을 일으킬 뿐이다. 또, 이러한 시도를 통해 쿠팡이 스스로 책임의 인정 범위를 최소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나아가 쿠팡의 ‘구매이용권’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법적 책임과 무관하게 제공하는 혜택에 불과한 것으로서 책임 인정에 따른 보상이나 배상과는 다르다. 실제로 쿠팡의 안내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마음으로 불편을 겪으신 고객님께 제공해 드리는 구매이용권”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그치고 있고, 이는 ‘구매이용권’의 사용처와 사용 기간을 전적으로 쿠팡이 정한 조건으로 제한한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 결과 소비자는 자신의 피해와 관련하여 쿠팡이 법적 책임에 대한 인정 없이 일방적으로 정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름과 연락처는 물론 주소나 공동현관 비밀번호와 같은 민감한 생활 영역의 정보까지 유출돼 일상의 평온을 위협받게 된 피해 소비자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1인당 5만 원 상당의 ‘구매이용권’은 소비자가 겪는 장기적인 불안과 2차 범죄에 대한 정신적 공포를 보상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종래 국내에서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법원이 통상 1인당 10만 원 수준의 배상액을 인정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쿠팡이 제공한 ‘구매이용권’은 그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또, 1인당 ‘5만 원’ 상당이라고 하나, 실제로 쿠팡 서비스 내에서 광범위하게 적용 가능한 금액은 ‘5천 원’에 불과하고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의 이용빈도가 높은 편인 쿠팡이츠 서비스까지 포함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손쉽게 이용이 가능한 금액은 ‘1만 원’에 불과하다. 더구나 쿠팡이 수시로 유료 멤버십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1만 6천 원’ 상당의 쿠폰을 유인 혜택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구매이용권’은 실질적인 책임 인정에 따른 조치라기 보다는 고객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소비자는 단순한 마케팅의 대상이 아니라 중대한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이며 정당한 배상을 받아야 할 주체이다. 소비자 피해 회복보다 신규 멤버십 고객 확보와 소비자 이탈 방지 마케팅 전략에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모습은 쿠팡의 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온라인 경제 시대에 개인정보 보호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법적 의무이자 서비스 이용을 위해 일정한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 신뢰의 기초이다. 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진정성은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책임 이행의 방식’에서 드러난다. 쿠팡은 지금이라도 피해 소비자 중심의 실질적 배상과 투명한 책임 이행에 나서야 한다.
쿠팡이 이러한 최소한의 원칙을 외면한 채 ‘구매이용권’ 제공을 통해 책임을 대체하려 한다면, 무너진 소비자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조건부 혜택’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책임 인정과 실질적 배상,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검증 가능한 후속 조치이다. 이것이야말로 온라인 플랫폼 기업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의 본질이며, 소비자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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