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타샤 튜더를 처음 만난 것은 영화관 안이었다. 스크린 속에서 그녀의 삶을 조용히 따라가던 그날과 며칠 뒤 전시장 한가운데 서서 실제 원화를 마주하던 날은 서로 다른 시간이었다. 같은 인물을 보고 왔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영화는 그녀의 하루를 천천히 들여다보게 했고, 전시는 그 시간이 남긴 흔적을 눈앞에서 확인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에 걸쳐,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타샤 튜더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먼저 다큐멘터리 ‘Tasha Tudor: A Still Water Story’를 보았던 날은 유난히 조용한 하루였다. 스크린 속 타샤 튜더의 삶은 예상보다 더 고요하고 단단했다. 영화는 그녀를 미화하거나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았다. 대신 사계절이 바뀌는 정원, 손으로 꿰매는 옷, 화롯불 앞에서 책을 읽는 시간처럼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담담히 비추었다. 그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빠르게 생산하고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시대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덜어내고 줄이며 자신만의 리듬을 지켜냈다. 그 태도가 인상 깊었다.
며칠 뒤, 롯데뮤지엄에서 전시를 관람했다. 이미 영화로 그녀의 삶을 한 번 만난 뒤라서인지 전시장은 낯설기보다 반가웠다. 원화 앞에 서니 종이의 결, 물감의 번짐, 연필선의 떨림이 눈에 들어왔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시간과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다. 책 속 삽화로만 보던 그림들이 한 사람의 생활과 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더 깊이 와 닿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삶과 작업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타샤에게 그림은 직업이기 이전에 생활의 일부였다. 정원을 가꾸는 손과 그림을 그리는 손이 다르지 않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과 이야기를 쓰는 시간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작업을 하며 종종 새로운 시도와 확장에 대해 고민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표현 방식을 넓혀가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라는 질문도 함께 따라온다.
영화와 전시를 통해 느낀 것은 결국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태도라는 점이었다. 타샤는 연필과 수채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했지만, 그녀의 세계는 결코 좁지 않았다. 오히려 분명한 세계관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전시장을 나서며 나의 작업을 떠올렸다. 한지 위에 아크릴 채색을 올리며 행복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간들, ‘몽다’와 ‘거복이’를 통해 따뜻한 감정을 전하고 싶었던 마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전하고자 한다. 타샤가 정원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가꾸었다면, 나는 그림과 교육을 통해 나의 정원을 가꾸고 있는 셈이다. 영화를 본 날의 잔잔한 여운과, 전시를 본 날의 구체적인 감동은 서로 다른 결이었지만 결국 하나의 생각으로 모였다. 창작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시선은 유행보다 오래가야 한다는 것. 타샤 튜더의 삶은 조용했지만 단단했고, 그 단단함이 작품을 지탱하고 있었다.
두 날에 걸쳐 만난 그녀의 세계는 내게 속도를 조금 늦추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더 많이,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깊게. 어쩌면 그것이 지금 내가 다시 새겨야 할 창작의 방향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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