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나는 밥상] 차례상에 '빨간맛'이 없는 이유와 차례(茶禮)의 반전 역사 #나... 왜 못 나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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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나는 밥상] 차례상에 '빨간맛'이 없는 이유와 차례(茶禮)의 반전 역사 #나... 왜 못 나가니?

위키트리 2026-02-24 08:53: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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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에 '빨간 맛'이 사라진 이유와 '차(茶)' 없는 차례의 반전 역사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 가족들이 모여 정성스레 차례를 지내지만 정작 우리가 차리는 상 위에는 눈에 띄게 부재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붉은색' 음식과 이름에 적힌 '차(茶)'입니다. 왜 차례상에는 고춧가루를 쓴 매콤한 음식이 올라가지 않는지, 그리고 왜 이름은 '차례'인데 정작 술을 올리는 문화가 정착되었는지 그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을 정리했습니다.

붉은색에 담긴 '벽사'의 의미 흔히 차례상이나 제사상에는 고춧가루나 붉은 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철칙으로 통합니다. 이는 단순히 조상님의 입맛 문제가 아니라, 민간 신앙 속 '벽사', 즉 귀신을 쫓는 힘과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붉은색을 태양과 피, 즉 생명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이를 잡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색이라 믿었습니다. 도적을 빨간색으로 쓰거나 밤이 긴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영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조상님을 모시는 자리에 붉은색 음식을 가득 차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조상님이 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믿음 때문에 '빨간 맛'은 차례상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이름은 '차례(茶禮)'인데 왜 상에는 술만 있을까? 설날 조상님께 인사드리는 예절인 '차례'는 한자 뜻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절'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차례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시대 충담스님이 설과 추석에 미륵불에게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 시대에는 이러한 차 문화가 민간으로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유교가 중심이 된 후에도 조상 숭배의 핵심 의식으로 차례는 이어졌습니다.

전쟁과 경제난이 바꾼 차례상의 풍경 그렇다면 오늘날 차 대신 술이 상을 점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정적인 계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었습니다. 잇따른 전쟁으로 차 재배지가 파괴되었고, 차를 마시는 데 필요한 도자기 그릇을 굽던 도공들마저 대거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조선의 차 문화는 급격히 위축되었습니다. 여기에 경제적 수탈까지 더해지자 차의 희소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귀한 차를 구하기 위해 농민들이 차밭을 태워버릴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자, 영조 임금은 백성들의 생활고를 덜어주기 위해 일종의 '가성비 정책'을 펼칩니다. 비싼 차 대신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술이나 숭늉으로 대신할 것을 지시한 것입니다. 왕의 백성 사랑이 담긴 이 지시가 오늘날 우리가 술을 올리는 차례 문화로 정착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명절, 차례상의 음식을 준비하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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