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흑백요리사', 잡채 한 그릇으로 장관이 된 사나이 이충
최근 요리 대결 예능 '흑백요리사'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요리사 및 요리 서바이벌 예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조선 시대에도 오직 '맛' 하나로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광해군 시절 잡채 판서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충입니다.
엘리트 관료의 변신, 왕의 입맛을 겨냥하다
이충은 본래 전문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현대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과거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문관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황폐해진 궁궐 상황 속에서 그는 출세를 위한 독특한 전략을 세웁니다.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광해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요리라는 치트키를 선택한 것입니다.
조선판 스마트팜 토굴을 활용한 신선한 잡채
전쟁 직후의 조선은 신선한 채소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습니다. 궁중 요리사들조차 왕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이충은 토굴이라는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땅을 파서 만든 지하 공간인 토굴은 겨울에도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채소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스마트팜과 유사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충은 이 토굴에서 길러낸 싱싱한 채소들로 따끈한 잡채를 만들어 광해군에게 바쳤고, 왕은 그 맛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실록에 기록된 왕의 집착과 잡채 판서의 등장
광해군의 이충 음식에 대한 애정은 실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왕은 식사 때마다 '이충의 집에서 음식이 왔느냐'고 묻고, 음식이 도착할 때까지 수저를 들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결국 이충은 요리 솜씨를 발판 삼아 지금의 기획재정부 장관 격인 호조판서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백성과 신하들은 그를 잡채 판서라 부르며 조롱했고, 당시 '잡채 쟁반이 궁으로 들어오더니 판서 관복이 나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그의 출세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유능한 관료인가, 아첨꾼인가
물론 이충이 오직 아첨으로만 그 자리를 지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조세 제도 혁명인 대동법 시행에 기여한 유능한 재정 전문가이기도 했습니다. 1619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광해군은 이틀간 조회를 중단하며 깊이 슬퍼했고, 그를 부총리급인 우의정으로 추증하며 마지막까지 신임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그의 정책적 업적보다 잡채라는 강렬한 별명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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