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서 싸우는 이들과 징집 회피자들 사이 사회 갈등
가족·직장 내서도 종종 문제…전후 사회 통합 과제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이나 이어지면서 전선에서 싸우는 이들과 동원을 회피한 사람들 간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가 23일(현지시간) 전했다.
우크라이나 드론 조종사 데니스의 처가에는 전쟁 기간 내내 불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데니스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초기부터 자원병으로 참전했으나, 아내 율리아의 삼촌은 동원령을 피해 도망쳤다. 율리아의 삼촌은 자원병 모집 순찰대를 만날까 봐 두려워 가급적 바깥 외출도 삼간다. 가족 모임에서 전선 이야기는 자연스레 기피 주제가 됐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가족 내 긴장감은 고조됐다.
어느 날 가족 모임에서 삼촌은 조카딸에게 "네 남편은 정말 전쟁이 끝나길 바라느냐. 전쟁으로 뭔가 이득을 보는 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 말에 데니스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웬만하면 삼촌과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데니스는 "각자 이유가 있으니 나는 그를 판단하고 싶진 않다"면서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양심을 속이기 위해 음모론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억눌린 분노의 증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르비우의 한 전사자 장례식에선 부상으로 휴가 나온 한 군인이 징집을 회피한 두 사촌의 악수를 거부한 일도 있었다. 당시 분위기에 대해 한 가족 구성원은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회상했다.
한 건설회사의 현장에선 전선에서 돌아온 근로자들과 다른 근로자들 간 싸움도 있었다.
이 회사의 한 간부는 "참전 용사들의 원망은 도발적인 말로 변하기도 한다"며 "이런 상황에 대해 인사팀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무도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미하일로 페도로우 신임 우크라이나 국방 장관은 징집 회피자를 약 200만명으로 추정했다.
이 발표 이후 군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회피자들'에 대한 조롱과 분노가 거리낌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도네츠크 지역의 한 드론 조종사는 "판단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왜 여기 있고, 그들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자주 떠오른다"며 "여기선 인력 부족으로 정상적인 교대 근무조차 제대로 못 한다"고 토로했다.
르비우의 재활센터에서 전사자들을 돕는 심리학자 율리아 아비얌은 "공정성 문제는 많은 참전 용사를 괴롭힌다"며 "'다른 이들은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데 왜 나는 건강과 친구, 사지를 잃었을까.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전쟁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이런 질문이 많은 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터에 가족을 내보낸 이들의 심리 상태도 비슷하다.
남편이 전선에 나가 있다는 한 우크라이나 여성은 "친구들이 '요즘은 남편 퇴근이 늦다'고 불평하는 걸 들으면 분노가 치밀어오른다"며 "나는 남편을 3∼4개월에 한 번씩 보는데 정말 힘들다"고 고백했다.
이런 내부 균열은 전쟁이 끝난 후 우크라이나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파리-낭테르 대학의 포스트소련 사회 전문가인 안나 콜린 르베데프는 "전쟁 중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변이 매우 복잡한 분열 지도를 그려낼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런 암울한 전망에 데니스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건 사회학자들에게 맡기겠다"며 "하지만 모든 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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