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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업계가 김치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객실과 뷔페에 머물던 ‘호텔 김치’는 명절 한정 상품에서 나아가 연중 판매 상품이 됐고, 온라인몰과 백화점 식품관을 거쳐 해외로 진출해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요. 표면적으로는 프리미엄 식품 확대 흐름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호텔 산업 구조의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국내에선 조선호텔과 워커힐호텔이 특급호텔 김치 시장에서 양강 구도를 펼쳐왔습니다. 여기에 롯데호텔, 파라다이스호텔, 서울드래곤시티 등도 후발주자로 나서면서 포장김치부터 김치를 활용한 가정간편식(HMR)으로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뷔페 밑반찬이었던 호텔김치, 백화점·온라인에서 세계로
국내 특급호텔 김치의 시초는 워커힐호텔입니다. 워커힐호텔은 1989년에 업계 최초로 ‘김치연구소’를 설립하며 1990년대 중반 ‘워커힐 수펙스 김치’ 상품화를 처음 시작했고, 2018년부터 홈쇼핑 및 온라인 판매 채널에서 합리적인 가격대의 세컨드 브랜드 격인 ‘워커힐 호텔 김치’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조선호텔앤리조트가 2004년에 김치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웨스틴조선 서울 뷔페 레스토랑 ‘카페로얄’에서 제공되던 김치가 고객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상품화가 시작됐습니다. 2004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식품관에서 본격 판매에 돌입한 이후 수요가 더욱 늘자 2011년 서울 성수동에 해썹(HACCP) 인증 공장을 설립해 본격적인 생산 체계를 구축했고, 꾸준히 증가하는 프리미엄 김치 수요에 맞춰 지난 1월19일 경기도 성남시에 약 500평 규모의 조선호텔 프리미엄 김치센터를 새롭게 열어 직영 생산시설을 확장 이전했습니다. 현재는 20여 종이 넘는 제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조직을 리테일 부서에서 분리해 별도 사업팀으로 격상시키며 힘을 싣고 있습니다.
한동안 워커힐호텔과 조선호텔이 주도하던 시장은 2023년을 기점으로 경쟁 구도가 확대됐습니다. 롯데호텔이 2013년과 2016년 김치 사업을 진출했지만 경쟁력 한계로 철수하고 지난 2023년 하반기 세 번째 도전 끝에 김치 사업을 공식화하며 가세했습니다. 김치 9종과 계절별 한정 상품은 물론 롯데호텔 김치찌개를 출시하며 HMR로도 확장했습니다. 이어 파라다이스호텔과 서울드래곤시티도 잇따라 포기김치를 출시했습니다. 호텔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김치 역시 브랜드를 비교해 선택하는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분위기입니다.
국내에선 코로나19 이후 가정 내 김장 문화가 축소되면서 포장김치 매출이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K-푸드의 인기로 해외 시장도 내다보고 있습니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2026년 조선호텔 김치 연매출 620억원, 2030년까지 1000억원 달성을 중장기 목표로 설정하며 미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습니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이마트 아메리카 법인(EAI)을 통해 미국 내 프리미엄 한국 식품 플랫폼인 울타리몰과 수출 계약을 체결하고 조선호텔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약 1.5t 규모의 첫 선적을 이달 개시하며 미국에 진출했고, 일본 시장은 오는 6월 오사카 한큐백화점 본점 식품관에서 7일간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배추김치, 겉절이, 깍두기 등 3종의 프리미엄 조선호텔 김치를 선보이며 공략할 예정입니다.
워커힐호텔 역시 미국 서부 지역 한인 밀집지역에서 김치 제품 판매를 시작하며 향후 멕시코, 캐나다, 동남아시아 등으로 수출 국가를 확대한다는 방침입니다. 롯데호텔도 김치 제품의 해외 판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매출 비중은 작지만, 의미는 작지 않다
현재 대형 호텔 체인의 전체 매출에서 김치·HMR·PB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조선호텔리조트의 경우 지난해 전체 연간 매출액이 7772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지난해 김치 연매출액이 540억원으로 전체 매출 대비 비중은 약 7%를 차지합니다. 다른 특급호텔 역시 김치 매출 비중이 업계 추정으로 1~5%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신라호텔, 롯데호텔 등 주요 호텔의 매출 구조를 보면 객실과 식음(F&B)이 여전히 중심을 차지합니다. 김치 사업은 ‘기타’ 또는 부가 사업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호텔들이 이 시장을 키우는 이유는 단순 매출 규모 때문만이 아닙니다. 수익 구조와 변동성 관리 측면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객실 사업은 고정비가 크고 경기 민감도가 높습니다. 가동률이 떨어지면 수익이 급격히 악화됩니다. 반면 김치와 같은 식품 사업은 변동비 중심 구조로, 경기 침체에 강하며 소규모로 시작이 가능해 리스크와 손익분기점이 낮습니다. OEM 생산을 활용하면 설비 부담이 낮아지지요. 더불어 반복 구매 가능성도 높습니다. 즉 규모는 작지만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드는 보완 축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호텔표’라는 가격 프리미엄
호텔 김치는 일반 식품 대기업이 선보이는 김치 대비 가격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소비가 이뤄지는 이유는 브랜드 전이 효과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김치를 구매하는 동시에 ‘호텔이 보증하는 맛과 위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원가 경쟁이 아니라 브랜드 경쟁이라고 볼 수 있지요. 실제로 많은 호텔이 직접 대량 생산을 하기 보다 레시피와 품질 기준을 제공하고 외부 생산시설을 활용합니다. 핵심 자산은 공장이 아니라 ‘브랜드’에 가중돼 있는 셈이지요. 이 점에서 호텔 김치는 단순 식품이 아니라 브랜드 자산의 현금화 모델로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전략
팬데믹은 호텔업계에 구조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관광 수요가 멈추자 객실 매출은 급감했고 적자 누적을 이어갔던 경험이 있지요. 반면 베이커리, HMR, 김치 등 일부 식품 매출은 상대적으로 선방했습니다.
이 경험은 호텔 전략을 바꿨습니다. 이제 목표는 단순히 객실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의 접점을 ‘체류 경험 밖’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김치, 침구, 향기 제품, 식기류까지 판매 영역을 넓히는 움직임은 호텔이 숙박업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기업으로 진화하려는 흐름으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호텔이 식품회사가 될까?
호텔업계가 완전한 식품기업으로의 전환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대량 유통망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CJ제일제당이나 대상 같은 대형 식품사와 정면 승부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텔의 본질은 여전히 공간과 서비스 경험에 있습니다. 식품은 이를 확장하는 수단이지, 핵심 산업을 대체하는 축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요. 다만 프리미엄·선물용·온라인 직판 중심의 고마진 시장에서는 경쟁 여지가 충분합니다. 특히 K-푸드 확산과 맞물리면 해외 확장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호텔업계의 김치 사업 성장세도 날이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어 기타 사업에서 나아가 지속 가능한 브랜드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조선호텔 김치 사업은 최근 몇 년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23.8%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확장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워커힐호텔 역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펙스김치와 워커힐 김치를 합산한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160% 늘었고, 지난해에도 164% 증가하며 두 자릿수를 훌쩍 넘는 성장 폭을 나타냈습니다. 호텔 김치가 ‘부가 상품’을 넘어 별도 수익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경계가 흐려지는 유통 지형
호텔의 김치 사업 확대는 산업 경계가 흐려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호텔은 식품을 팔고, 식품기업은 레스토랑을 운영합니다. 백화점은 PB를 강화하고, 유통사는 자체 브랜드를 키우고 있습니다. 김치 사업은 그 상징적 사례로 볼 수 있지요. 호텔이 객실 밖에서 수익을 찾기 시작한 지금, 김치는 단순 반찬이 아니라 호텔 산업 다각화 전략의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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