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전국 각지에서 산불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산림청장의 음주운전 사고로 공직 사회 내 기강 해이와 음주운전 관리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음주운전이 상습성이 높은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처분이 기관 재량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고 재발 방지를 위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산림청 등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김인호 산림청장은 지난 21일 이재명 대통령의 조치에 따라 직권면직됐다. 산림청 공무원 노동조합은 정부의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 전 청장은 지난 20일 오후 10시 50분께 음주 상태로 차량을 몰다 버스와 승용차 등 차량 2대를 잇따라 들이받았다.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고 당시 김 전 청장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김 전 청장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형사 입건해 수사 중이다.
문제는 이번 사고가 산불 대응의 ‘골든타임’으로 꼽히는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국내 1~3월은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며 산불 발생이 가장 잦은 시기다. 지난해 초대형 산불을 겪으며 산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올해 역시 초봄부터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큰 피해를 남긴 경북 의성·경남 산청·울산 울주 산불은 모두 3월에 발생했다. 전북 고창·정읍 산불과 무주 산불 역시 지난해 3월 말 지역을 덮치며 피해를 키웠다. 산림청 산불발생정보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전국에서 143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 21일 오후 9시 14분께 경남 함양군 마천면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불은 올해 첫 대형급 산불로 평가되며 이날 오후 1시 기준 진화율은 69%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산림청 수장이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우면서 조직 내 혼선도 커지고 있다. 현재는 김 전 청장을 대신해 박은식 산림청장 직무대리가 함양 산불 진화 전략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산림청 공무원 노조는 사고 이후 성명서를 통해 “올해는 산불 방지를 위해 비상 대응 태세를 지난 1월 20일로 앞당겨 전 직원이 헌신하고 있는 준전시적 상황이었다”며 “기관장의 위법 행위는 조직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고 구성원들의 사기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공직사회 내 음주운전 문제는 공직사회 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국내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지만 음주운전은 상습성이 높고 사고로 이어질 경우 피해 규모가 큰 범죄인 만큼 처벌 강화와 국가 차원의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특히 국가공무원 사회에서 비교적 낮은 수준의 징계가 반복되며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23일 관보를 통해 서울중앙지법 소속 A 부장판사에게 지난 3일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A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3시께 서울 중랑구 일대에서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정지 수준인 상태로 약 4㎞를 운전하다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감봉은 1개월 이상 1년 이하 기간 동안 보수의 3분의 1 이하를 삭감하는 처분으로 정직보다는 약하고 견책보다는 강한 징계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각급 법원을 포함한 대법원 산하 기관에서 법관이나 공무원이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은 사례는 39건에 달했다. 그러나 징계 수위는 대부분 정직 1개월 이하 또는 감봉에 그쳐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법원행정처는 2021년 ‘법원공무원 징계 양정 등에 관한 예규’를 개정해 음주운전 2회 적발 시 최고 파면까지 가능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재범자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최혁진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음주운전 2회 이상 징계 대상 공무원의 목록과 관리 현황은 별도로 파악·보관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별·개인별로 처벌 수위가 달라지는 문제 역시 음주운전이 반복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국 38개 국립대학 사례를 보면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 따라 혈중알코올농도와 적발 횟수별 징계 기준이 마련돼 있음에도 실제 징계 여부와 수위는 각 대학 징계위원회의 재량에 맡겨져 있었다.
부산대학교는 2021년 혈중알코올농도 0.104%로 적발된 교수에게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지만 2024년 유사한 수치(0.103%)로 적발된 교수에게는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내렸다. 또 한국교원대가 음주운전 2회 적발 교수에게 해임 처분을 내린 반면 진주교육대는 같은 사유로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리는 등 징계 기준의 일관성이 부족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에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은 “음주운전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며 “국립대 교직원들이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책임감을 갖도록 최소한의 표준화된 징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공직사회 내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 처벌 기준의 통일과 징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공직윤리 분야 한 전문가는 본보에 “음주운전에 대한 징계가 일부 기관에서 관대하게 이뤄질 경우 공직사회 전반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기관별로 제각각인 징계 기준을 통일하고 실효성 있는 처벌이 이뤄져야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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