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작업만 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번역에 쏟아 왔다. 사실 번역도 큰돈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번역을 하면서 틈틈이 작업하는 삶이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려면 집세 같은 고정비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래서 마흔이 넘도록 본가에서 독립하지 못했다. 아마 주변의 많은 동료 예술인도 나와 같은 처지일 것이다.
내 부모님은 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나무라지 않았고 집을 구해 나가라고 눈치를 주지도 않았다. 아마 내가 돈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직장에 안 다니고 방에만 처박혀 있었지만,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나를 부양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독립을 했다. 뒤늦게 취직해 따박따박 월급을 받게 된 것도 아니고, 번역가로서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왔다. 이제는 부모님과 떨어지고 싶었다. 본가가 주는 스트레스가 안정감을 한참 넘어선 시점이었다. 그 안에 계속 머물면 앞으로도 부모님이 정한 규칙에 휘둘리며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도 나였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산 덕분에 적게 벌어도 아껴 쓰며 하고픈 일, 하고픈 작업을 하며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마흔에 접어들면서 부모님과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다. 주로 수건을 거는 방식, 신발을 놓는 방식 같은 사소한 문제 때문이었다. 내 생각엔 전혀 싸울 일이 아닌데도 언성이 높아졌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어디 ‘내 집’에서 나갈 수 있으면 나가 보라는 식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가족 간 홧김에 한 말이었겠지만 몇 년간 반복해 듣는 사이 상처가 커졌다. 한편으로는 위기감도 들었다. 내 자존심을 지키려면 앞으로 내가 있을 곳은 내 스스로 꾸려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고, 그게 옳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독립한 건 아니다. 공동 작업실 1년, 개인 작업실 1년을 거치며 월세를 감당할 여력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했다. 그때만 해도 반드시 독립하겠다고 결심할 만큼 모질지는 못했다. 그저 집 바깥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번역 수입으로 월세를 내기엔 역시 빠듯했다. 더 안정된 삶을 갈망하며 취직을 하기에 이르렀다. 직장이 멀어 고시원에 들어갔는데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독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고시원 방은 본가의 내 방보다 훨씬 작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도 거의 갖춰져 있지 않았다. 초반에는 덮을 담요도, 껴입을 옷도 없어 떨며 잔 밤도 있었다. 그래도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구비할 때마다 생활이 조금씩 나아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곳에선 무엇을 먹고 마시든, 어떻게 물건을 놓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직장은 금세 그만뒀지만 본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미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생긴 뒤였다. 안정된 수입이 끊겼지만, 통장 잔고와 한 달 생활비를 계산해 보고 일단 독립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직장에 적응하면 고시원 생활을 접고 방을 구할 생각이었기에 주변 원룸을 꾸준히 살피고 있었다. 결국 퇴사로 끝나고 말았지만, 유력한 후보지였던 곳에 바로 방을 얻었다. 하루 만에 계약하고 일주일 안에 이사까지 마쳤다. 내가 지내던 고시원의 한 달 방값이 유난히 비쌌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짐을 빼는 게 무조건 이득이었다.
그게 작년 9월이니 이제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고시원 시절까지 더하면 거의 1년 가까이 밖에서 혼자 버틴 셈이다. 지금 사는 곳은 상권이 좋지 않아 걸어서 갈 만한 대형마트도 없고, 다른 데는 흔한 프랜차이즈 가게도 많지 않다. 게다가 집 안은 늘 습도가 높아 조금만 방심해도 바로 곰팡이가 핀다. 그래도 독립한 것에는 100% 만족한다. 현실이 고되고 앞날이 불안해도 비로소 자유가 된 듯한 이 기분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이제 내 공간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일하고 작업할 수 있으리라 조금 설렜는데, 늘어난 고정비만큼 돈을 더 벌어야 해서 작업할 틈이 없었다. 6개월 동안 휴일도 거의 없이 일만 했다.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누수 문제까지 터졌다. 성급히 방을 계약한 대가였다. 내 잘못이 아니라서 거기에 신경을 쏟는다고 해결이 될 리는 없었고, 일하는 동안에는 모든 걸 잊을 수 있었기에 더더욱 일에 몰두했다.
12월 초, 윗집으로 옮기면서 비로소 문제는 정리됐고 이곳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이 시점에서 애초에 내가 원했던 삶은 오로지 일만 하는 삶이 아니었음을 다시 되새긴다. 오늘은 일하던 손을 멈추고 새로운 작업을 도모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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