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이유/미야베 미유키/ 청어람미디어
일상의 균열은 대개 소리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틈으로, 우리가 외면해 온 질문이 스며든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무엇이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어냈는가.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소설 '이유'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범죄는 이미 벌어졌고, 범인은 특정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는 묻는다. ‘누가’가 아니라 ‘왜’라고.
이야기는 도쿄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연루된 참극이지만 소설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형사의 추적이나 반전의 묘미 대신, 사건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택한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구성이다.
이 선택은 분명 의도적이다. 범인을 단죄하기보다, 그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을 해부하려는 태도다. 한 사람의 범죄를 공동체의 거울로 삼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유'는 스릴러라기보다 사회소설에 가깝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건을 확대하지 않는다. 대신 맥락을 확장한다.
작품의 핵심에는 ‘집’이 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라 불안의 상징이 되었다. 대출, 담보, 명의, 위장 전입, 불법 점유…. 아파트 한 채를 둘러싼 욕망과 공포가 얽히고 설킨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느낀다. 한국 사회 역시 부동산을 축으로 계층이 갈리고, 삶의 궤도가 달라진다. 영끌 대출, 깡통 전세, 경매 아파트…. ‘내 집 마련’은 여전히 신화처럼 떠돌지만, 그 이면에는 균열이 깊다. '이유'는 일본의 이야기이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도시 중산층의 공통된 초상이다.
집은 공간이 아니라 지위이고, 안전망이며, 미래에 대한 보험이다. 그 보험이 무너질 때 인간은 어디까지 흔들리는가. 미야베 미유키는 그 흔들림의 진폭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목소리의 다양성이다. 경찰, 이웃, 친척, 부동산 관계자, 동네 상인…. 각자의 말은 조금씩 다르고, 때로는 서로를 부정한다. 그러나 그 불일치 속에서 오히려 진실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작가는 인터뷰 형식을 빌려 객관성을 가장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을 응시한다. 범죄자조차 악마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가장이며,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렇게 보면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균열 난 사회의 결과다.
미야베 미유키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하며, 사회의 이면을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전해진다. 초기에는 판타지와 미스터리를 오갔지만, 결국 그녀의 중심에는 언제나 ‘보통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범죄를 쓴다기보다, 그 배경을 쓴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이유'는 화려한 문장 대신 절제된 문체로 사건을 따라간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서늘하다. 마치 법정 기록을 읽는 듯 건조하지만, 문장 사이로 인간의 체온이 스민다.
소설의 제목은 단순하다. 그러나 무겁다. ‘이유’는 변명이 아니다. 설명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범죄의 동기를 좁게 해석하면 돈 문제, 체면, 두려움 같은 단어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나 미야베 미유키는 그보다 깊은 층위를 파고든다. 경제적 불안, 가족 구조의 붕괴, 사회적 고립, 제도의 사각지대…. 이유는 단수형이 아니다. 복수의 이유가 얽혀 하나의 사건을 만든다.
이 작품을 읽으며 한국의 뉴스 화면이 겹쳐진다. 생활고로 인한 극단적 선택, 전세 사기 피해자, 빚에 몰린 자영업자…. 우리는 사건을 소비하고, 분노하고, 곧 잊는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은 끝내 남는다.
'이유'는 독자에게 불편한 숙제를 남긴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사정을 이해하려 했는가. 제도는 과연 개인을 보호하고 있는가. 부동산과 신용 점수가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기대어야 하는가.
미야베 미유키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정직하다. 인물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읽다 보면 한 편의 기록영화를 보는 듯하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수록 긴장감은 커지지만, 그 긴장은 추리의 쾌감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독자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곁에 앉힌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땠겠느냐고.
'이유'는 추리소설의 경계를 넓힌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범인을 찾는 대신 사회를 탐문하는 방식. 이는 장르의 외연을 확장하는 시도이자, 문학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소설은 오락을 넘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는가. 미야베 미유키는 그렇다고 답한다.
이 작품의 밑바닥에는 연민이 흐른다. 범죄를 정당화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것이 이 소설을 단순한 사회 고발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다. 연민은 약함이 아니다. 타인의 사정을 상상하는 능력이다.
한국 사회가 점점 더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이유’를 묻기보다 ‘책임’을 묻는 데 익숙해진다. 물론 책임은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만으로는 공동체를 회복할 수 없다. 이해와 제도의 보완이 병행되어야 한다.
책을 덮고 나면 사건의 세부보다 질문이 오래 남는다. 우리는 서로의 이유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유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야베 미유키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기록한다. 한 시대의 불안과, 그 불안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초상을. '이유'는 범죄소설이면서도 사회 보고서이고, 동시에 인간 탐구서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아무 일도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건에는 축적된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외면하지 않는 사회만이, 비극을 줄일 수 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질문을 남길 수는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그 질문의 힘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오늘도 뉴스를 본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한번 물어야 한다. 왜였는지.
뉴스컬처 최병일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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