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 웹 3.0: 유행이 아니라 '권리 설계의 언어'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K-컬처 팬덤 비즈니스가 대형 플랫폼과 기획사 중심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를 웹 3.0 정신에 맞게 재편해 더욱 확산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은 스타의 영향력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취급하지 않는다. 음원, 뮤직비디오, 공연 실황, 안무, 캐릭터, 세계관, 팬 커뮤니티, 2차 창작 권리 등 각각을 독립된 자산 단위로 나누어 기록할 수 있다.
한 곡의 음악은 스트리밍 수익만이 전부가 아니다. 공연 사용료, 광고·드라마 삽입권, 리믹스 허가권, 리릭 비디오(Lyric Video, 노래 가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뮤직비디오로, 가사 전달과 시각적 효과를 결합해 음악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식임)·댄스 챌린지 같은 2차·3차 창작 권리, 팬클럽 및 커뮤니티 접근권 등으로 쪼개질 수 있다.
이렇게 잘게 나뉜 조각들은 디지털 토큰, 지분 증서 등의 형태로 추적 가능해지고, 일정 조건에 따라 공동 소유와 장기 수익 분배가 가능해진다. 한 번의 히트, 한 번의 입소문은 더 이상 휘발되는 사건이 아니다. 시간에 따라 계속 작동하는 소득권이자, 금융 자산이 된다.
이 구조 안에서 팬은 더 이상 받아쓰기만 하는 소비자가 아니다. 참여자이자 이해관계자가 된다. 응원은 감정 표현을 넘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행위가 되고, 참여는 자연스럽게 권리와 이해관계로 연결된다. 특정 곡이나 프로젝트의 성공이, 그것을 먼저 알아보고 지지한 이들에게도 일정 부분 돌아가는 구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 블록화 시대, K-컬처가 '10억 덕후'를 필요로 하는 이유
지금 세계는 다시 블록화되고 있다. 각국은 자국의 문화와 데이터, 플랫폼을 보호하고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정점에 달한 뒤, 각국 정부와 기업은 자국 내 창작 생태계와 데이터 주권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꺼내 들고 있다.
동시에 분산형 기술은 중앙 플랫폼 없이도 권리 관리와 수익 분배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 간극이 바로 기회다. K-컬처는 이미 글로벌 인지도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인지도를 어떻게 '자산 구조'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다.
1억 명의 관광객, 2억 명 규모의 중산층 유학생, 그리고 전 세계 10억 명의 K-컬처 덕후라는 상상은, 그저 팬 수 계산만이 아니다.
1억 명의 관광객은 한국을 실제로 찾고, 도시와 지역에 머무르며, 소비와 경험을 통해 로컬 경제에 직접 연결되는 사람들이다. 수백만 명 단위의 유학생·연수생은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체험한 뒤, 자국으로 돌아가 한국과 세계를 잇는 중간자 역할을 하게 될 잠재적 인적 네트워크다. 또한, 10억 명의 글로벌 덕후는 이들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영향력 풀(pool)이다. 이 풀은 콘텐츠 소비뿐 아니라, 2차 창작, 밈(meme) 생산, 로컬 이벤트, 팬덤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자발적 에이전트 집단이 된다.
이 수치는 문화 구호가 아니라 산업 전략이자 경제 전략이다. 영향력은 더 이상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로 끝나지 않는다. 어디에, 어떤 형태로, 누구의 자산으로 축적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무역수지, 도시 경제, 청년 일자리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 '누가 스타를 갖는가'에서 '누가 함께 소유하는가'로
지금 한국은 드물게 두 조건이 동시에 성숙한 시점에 서 있다. 하나는 세계적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콘텐츠 역량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과 지역이 새로운 경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와 분산 기술 환경이다.
그동안 한국의 문화산업 정책은 대체로 '세계 5대 콘텐츠 강국', '수출 00억 달러' 같은 총량 지표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대기업과 플랫폼은 세계 시장에서 인상적인 성과를 냈지만, 그 과실이 개인 창작자, 팬덤, 지역 커뮤니티까지 충분히 흘러 내려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많은 경우, 개인과 지역은 글로벌 플랫폼과 대기업의 하청, 혹은 이벤트성 인프라 제공에 머물러 왔다.
앞으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누가 스타를 만들어냈는가'가 아니라, '스타의 성공이 누구의 자산으로 축적되는가'다. 세계적 인플루언서는 더 이상 한 개인의 커리어에서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그 주변에는 지역 경제, 청년 세대의 진로, 국가 이미지, 관광·교육·소비까지 다양한 산업 효과가 연결된다.
이런 존재를 시민과 지역이 함께 키우고, 그 성과를 공동 자산으로 쌓아 나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웹 3.0과 분산 기술은 이 구상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도구다. 스타의 성공에 대한 지분을, 참여도와 기여도에 따라 더 넓은 주체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은 이제 이론이 아니라 구현할 수 있는 설계가 됐다.
세계적 인플루언서를 키운다는 것은, 몇 명의 스타를 해외 차트와 시상식에 올려보내는 차원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자본, 지역의 문화, 개인의 창작이 결합한 분산형 산업 구조를 구축하는 일이다.
K-컬처가 10억 명의 덕후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더 많은 구독자와 조회수가 필요하다는 뜻도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고, 변주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이 생태계의 '이해관계자'가 되는 구조를 만들자는 제안에 가깝다.
세계가 블록화될수록, 한 블록 안에서 경쟁하는 것은 더 이상 국가 단위의 이미지가 아니다. 어느 도시가 더 많은 팬 커뮤니티를 품고 있는지, 어느 지역이 더 많은 창작자와 인플루언서를 배출하는지, 그리고 그 성공을 어떻게 로컬의 자산으로 쌓아 가는지가 승부를 가른다.
K-컬처의 다음 단계는, 세계적 인지도를 '공유할 수 있는 자산 구조'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1억 명의 방문자, 수백만 명의 유학생, 10억 명의 덕후가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 영향력은 비로소 장기적인 힘이 된다.
전태수 웹 3.0·블록체인 전문가
▲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 한국인터넷미디어윤리위원회 이사장. ▲ 세계스타트업포럼 대표.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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