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에 동양 최대 아쿠아리움을 계획하고 있다는 지자체에서 자문요청이 들어 온 적이 있다. 나는 해당 지자체의 자문회의에 가기도 전에 그 지자체의 무모한 계획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전화로 결론을 전달하고 자문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새만금이 보고 싶어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새만금으로 가는 길은 김제평야를 가로지른다. 도시의 수직에 피로감이 쌓인 나에게 김제평야의 수평은 치유의 경관이다. 새만금에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나라의 리아스식 서해안과 갯벌은 세계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생태환경이다. 한번 망가지면 복원이 불가능한 지구의 소중한 자원이다.
동양 최대 아쿠아리움을 세우겠다고 하는 자리를 둘러보니 다행히 조금씩 생태환경이 복구되고 있었다. 자문회의는 해당 부서 내 개방된 회의 테이블에서 열렸다. 나는 해당 부서 직원들이 다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내 주장을 펼쳤다.
“세계적으로 보존해야 할 갯벌을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서 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인공 구조물을 만들려고 합니까. 동양 최대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건물을 크게 짓겠다는 것인지, 고래상어 같은 초대형 생물을 가두어 두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수족관에 생물 개체수를 동양 최대로 많이 채우겠다는 것인가요. 이 지역은 가장 잘 보존된 자연이 경쟁력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새만금을 가만히 두면 좋겠습니다.”
그날 자문회의를 마치고 난 이후 그 지자체에서는 더 이상 자문요청이 없었다. 나를 초청한 담당 공무원은 문책을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충청북도에서 해양과학관을 추진한 적이 있는데, ‘바다가 없는 충북에 해양과학관 건립’이라는 슬로건으로 몇 차례 도전했지만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자 ‘충북에 바다를 주세요’라는 도민 서명 이벤트도 진행하고 바다가 없는 충북에 해양과학관이 꼭 필요하다고 기획재정부와 국토해양부에 지역 단체들이 건의문을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도 그런 슬로건이 들어있는 홍보물이 붙어있었다.
해양과학관 건립과 관련된 제안서를 다시 보완해서 기획재정부에 제출하기 전에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회의가 있었다. 그 자리에 초청된 자문위원은 주로 해양이나 환경생태 관련 교수들이었다.
나는 아쿠아리움 설계 전문가 자격으로 초청되었다. 제출자료에 대한 실무 공무원의 브리핑과 토론이 있고 나서 자문위원들과 도지사의 간담회가 있었다. 해당 부서 공무원들도 배석한 자리였다. 간담회를 마치기 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해양과학관 유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교수들은 대부분 바다가 없는 충북에 해양과학관 유치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발언하게 되었다.
“여기서 한 시간만 가면 실제 바다가 있는데 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가짜 바다를 만들려고 합니까? 그 돈은 국민 세금이고 그 안에는 내 돈도 들어가 있습니다. 다른 시도에 있는 시설을 중복투자 하지 말고 충북만의 고유한 것, 경쟁력 있는 것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 내 발언을 끝으로 간담회는 아주 어색하게 끝났다. 현관을 나서는데 간담회에 참석한 공무원 한 분이 내 옆으로 바짝 다가서서 자기도 내 의견과 똑같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지자체의 자문회의에 초청받지 못하고 있다.
전국에 수많은 박물관·과학관·생태관이 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만들어서 중복투자 된 시설이 많다. 그중 상당수가 전시 내용이 유사하고 시설이 낡아서 관람객이 찾지 않는다. 관리하는 직원이 관람객보다 많은 곳도 많다.
도로와 철도가 날로 좋아지고 있으니 이제 전국이 일일 관광권이 되었다. 타 지역에 있는 유사 시설은 이제 그만 만들고 지자체마다 지역 특화 관광자원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경쟁력이다. 다행히 동양 최대 새만금 아쿠아리움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러나 충북에는 1000억원이 넘게 들어간 해양과학관이 준공을 앞두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국가 재정법에 따라 대규모 신규 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중립적 기준에 따라 사전 검증하는 제도다. 예산 낭비를 막고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인 사업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한양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 온 환경·생태 전시 설계 전문가로 코엑스아쿠아리움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가의 여행스케치> , <건축가의 아침산책> , <작은집이야기> 등이 있으며, 일상에서 접하는 건축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 점차 잊혀가는 마을과 도시의 풍경을 스케치와 글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하며 도시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작은집이야기> 건축가의> 건축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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