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반도체 핵심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범들 사이에 영업비밀을 주고받은 행위도 ‘사용’과는 별개의 범죄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기술 유출 범죄 전반을 보다 폭넓게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로, 향후 산업기술 침해 사건의 양형 기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최근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전 직원 김모 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유진테크 전 직원 방모 씨 등 공범 2명도 다시 판단을 받게 됐다.
김씨는 삼성전자 퇴사 후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로 이직한 뒤, 삼성전자와 유진테크 등의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2024년 기소됐다.
이들은 반도체 증착 장비 설계 도면 등 영업비밀을 무단 반출해 네트워크 연결 저장장치(NAS)에 올린 뒤 중국 현지 개발에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서로 영업비밀을 넘기고, 모르는 부분을 공유하며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1·2심은 이들의 행위를 영업비밀 ‘사용’에 따른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만 판단했다. 공범 간 기술 공유 행위는 이미 사용죄에 포함된다며, 영업비밀 누설이나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2심에서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재판부는 부정경쟁방지법이 영업비밀의 ‘취득’, ‘사용’, ‘제삼자 누설’을 각각 독립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공범 사이에서 이뤄진 영업비밀 전달 역시 별도의 범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영업비밀을 알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이를 넘겨주는 경우, 이후 공동 사용을 공모했는지와 무관하게 넘겨준 자에게는 누설죄가, 받은 자에게는 취득죄가 각각 성립한다”며 “이는 사용죄에 흡수되지 않는 실체적 경합범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NAS 서버에 영업비밀을 올린 행위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동시에 성립하는 ‘상상적 경합’에 해당한다며, 원심의 산업기술보호법 무죄 판단 역시 함께 파기했다.
이번 사건으로 유진테크를 비롯해 삼성전자, 원익아이피에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영업비밀 침해의 전 단계를 폭넓게 처벌해 기업 기술을 보호하려는 것이 입법 취지”라며 “원심은 이러한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반도체 등 국가 핵심 산업 기술 유출 사건에서 ‘사용’뿐 아니라 ‘취득·누설’ 단계까지 적극 처벌하는 흐름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범 간 내부 공유 행위까지 독립 범죄로 인정한 만큼, 향후 기술 유출 사건의 처벌 수위도 전반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