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법전에 없던 '관세', 150일 시한부 전쟁 뒤 도사린 '슈퍼 301조'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이용웅 칼럼]법전에 없던 '관세', 150일 시한부 전쟁 뒤 도사린 '슈퍼 301조'

비즈니스플러스 2026-02-23 08:38:44 신고

3줄요약
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날카로운 경제 무기였던 '보편 관세'에 제동을 걸었다. 6대 3 판결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관세 부과를 위헌으로 규정했다.

시장은 즉각 환호했고 뉴욕 증시는 반등했다. 그러나 이 판결을 단순히 트럼프의 패배나 자유무역의 귀환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법원이 보호무역주의의 대문을 폐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다른 틈새로 담벼락을 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트럼프가 직접 임명한 닐 고서치와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의 '배신'(?)이다. 이들은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손잡고 행정부의 독주를 막아섰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변심보다 보수 법학의 정수인 '문언주의'(텍스트주의)의 승리에 가깝다. "법전에 '관세'라는 단어가 명시되지 않은 이상,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해서 세금을 새로 만들 권한은 없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고서치 대법관은 문언주의 해석론의 대가인 안토닌 스칼리아 전 대법관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판결문을 작성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행정부는 IEEPA 문구가 관세에 적용될 수 있다고 의회가 명시한 어떠한 법률 조항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77년 발효된 IEEPA는 외국 상황이 미국 국가 안보나 경제에 특별한 위험이 된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에게 경제 거래 통제 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평시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 단독'으로 부여했다"고 명시했다. 관세에 외교적 영향이 있다고 해서 의회가 모호한 표현으로 권한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가 대통령의 초헌법적 권한을 꺾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단 직후인 지난 20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단 직후인 지난 20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플랜 B'의 등장, 150일 시한부 관세의 공포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무역법 122조를 꺼냈다. 대법원이 무효화한 IEEPA 대신 "미국을 갈취해온 국가들에 대한 10% '글로벌 관세'(Worldwide Tariff)를 법적 검증을 거친 최대 수준인 1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관세를 15%로 높여 부르며 행정부의 실력으로 맞선 셈이다.

무역법 122조는 국제수지 악화를 이유로 대통령이 전면 관세나 수입 제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다만 이 조치는 150일까지만 유효하며, 연장하려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관세 전쟁이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단거리 질주에서 의회 협상이라는 마라톤으로 성격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개별 품목마다 다르게 적용될 가능성도 크다. 핵심 광물, 승용차, 일부 식료품 등은 제외됐기에 우리 수출품에 미칠 구체적 영향은 더 지켜봐야 한다. 특히 철강·알루미늄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이미 25~50% 고율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여기에 15% 추가 관세가 더해질 수 있어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의 윌리엄 페섹 기고가는 한국과 일본이 대법원 판결까지 지연 전략을 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우리에게 무조건 우호적이지는 않다. 트럼프가 무역법 122조를 꺼낸 것은 관세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교묘한 법적 게릴라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대법원이 정문(IEEPA)을 잠그자 대통령이 뒷문(무역법 122조, 슈퍼 301조)을 따고 들어가는 양상이다. 이제 공은 의회 로비와 정치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기업들은 백악관뿐 아니라 각 지역구 의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대법원은 '법전'을 읽었지만, 트럼프는 '301조의 역사'를 읽고 있다

1990년대 초 미국의 대일 무역 적자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경제 전쟁을 선포하며 잠자던 슈퍼 301조를 1994년 부활시켰다. 301조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미국이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규정이다. 특히 슈퍼 301조는 특정 국가를 집중 압박하는 장치였다.

당시 미국은 일본산 고급 승용차에 100%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하며 일본 시장 내 외국산 반도체 점유율을 20%까지 올리라고 강요했다. 이는 사실상의 '관리 무역'이었다. 트럼프가 관세를 아름다운 단어라고 주장하는 데는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슈퍼 301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결국 100% 관세 폭탄을 피하려 미일 자동차 협정에 서명했다. 이 과정에서 엔고와 내수 개방 압박을 받으며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에 빠졌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클린턴 역시 문언주의의 허점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법전 자구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챙겼다.

2026년의 트럼프는 대법원 판결로 잃은 명분을 클린턴이 닦아놓은 슈퍼 301조 위에서 되찾으려 한다. 과거 일본이 겪은 강제적 시장 개방 시나리오가 한국, 중국, 유럽을 향한 합법적 협박으로 돌아올 수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는 무역법 301조에 따라 여러 교역국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차별'을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띈다. 이는 한국의 플랫폼 규제(온플법)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겠다는 선전포고다. 30년 전 일본의 렉서스 대신 한국의 플랫폼 산업이 사선에 섰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미국 투자사들이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 대응을 문제 삼으며 무역법 301조 조사를 청원한 것도 껄끄러운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는 2024년 557억달러에서 관세 전쟁이 시작된 2025년에도 560억~570억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슈퍼 301조가 자동 부활하는 것은 아니다. USTR의 광범위한 조사와 협상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차별적인 IEEPA와는 결이 다르다. 행정명령만으로 부활시킬 때 사법 리스크가 따를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하지만 15% 글로벌 관세의 유효기간 150일은 슈퍼 301조를 준비하는 기간이 될 수 있다. 구체적 증거를 들이대면 의회나 사법부를 설득하기가 보편 관세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미국 대법원은 법전을 읽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301조의 역사를 읽고 있다. IEEPA가 사라졌다고 안도할 때가 아니다. 클린턴 시대 일본처럼 법보다 무서운 보복 관세가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광역 무기는 봉쇄됐지만 122조와 301조라는 지렛대는 살아 있다. 법적 정당성을 확보한 뒤 더 선별적이고 전략적인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문언주의라는 방패 뒤에 숨기엔 슈퍼 301조라는 창이 너무나 날카롭기 때문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Copyright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