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서울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쓰다, 이중섭’ 전시는 ‘보다’가 아니라 ‘읽다’에 가까운 전시였다. 캔버스 위의 이미지들을 감상한다기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견디며 기록했는지를 따라가는 시간이었다.
제목처럼 이 전시는 끊임없이 묻는다. 그는 무엇을 어떻게 ‘썼는가’라고. 이중섭의 그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소’다. 강인하게 버티고 있는 소, 몸을 웅크린 채 정면을 응시하는 소, 금방이라도 돌진할 듯한 눈빛을 지닌 소. 우리는 그것을 민족적 상징이라 부르기도 하고, 시대의 은유라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보며 나는 조금 다른 감각을 느꼈다. 그 소는 거대한 역사보라기보다 한 개인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존재처럼 다가왔다. 전쟁과 피난, 가족과의 이별, 가난과 병. 그는 화가이기 이전에 시대를 통과해야 했던 한 인간이었다. 작품 속 거친 선과 빠른 붓질은 형식적 실험 그 이상의 절박한 흔적처럼 보였다. 특히 은지화가 인상 깊었다. 은박지를 송곳으로 긁어 그린 선들은 부드럽지 않고 날카롭다. 그 선은 마치 종이를 뚫고 나올 듯 긴장되어 있다. 그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삶을 긁어 새긴 것은 아닐까.
또 하나 깊이 남은 것은 편지와 기록물들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낸 엽서와 손글씨. 그 안에는 화가의 언어 이전에,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예술은 언제나 거창한 선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적인 언어 속에서도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청년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이 전시는 여러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작업하는가. 시장의 평가를 위해서인가, 동시대의 담론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결국 나 자신의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인가. 요즘의 나는 전통 재료와 디지털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지 위에 아크릴을 올리고, 캐릭터를 만들고, 3D펜으로 입체를 확장한다. ‘행복’과 ‘꿈’을 이야기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고민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작업은 늘 이상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이중섭의 삶을 떠올리면 예술가의 길이 얼마나 고독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생전에 큰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했고, 사후에야 거대한 이름이 되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지만, 생전의 그는 늘 궁핍했다. 이 간극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예술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는가. 그러나 동시에, 그의 작업은 나에게 또 다른 용기를 준다.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창작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결핍과 제한 속에서 더 선명한 언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 담뱃갑 은박지라는 가장 일상적이고 하찮은 재료 위에 남겨진 선들이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라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종종 ‘행복’을 주제로 작업하면서 스스로 묻는다. 행복을 말하는 것이 과연 가벼운가, 혹은 도피적인가. 그러나 이중섭의 작품을 보고 나니 오히려 더욱 분명해졌다. 고통을 지나온 사람만이 진짜 온기를 그릴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의 가족 그림 속 아이들의 얼굴에는 짙은 애틋함이 담겨 있다. 그것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그릴 수 있는 온기였다. 예술은 결국 자신을 쓰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매일 작업을 통해 자신을 기록하고, 긁어내고, 새긴다. 그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의미가 아닐까.
속도의 시대다. 이미지가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된다. 디지털 화면 위의 작업은 저장과 삭제가 너무나도 쉽다. 그 속에서 은지화를 긁어내던 손의 움직임을 떠올리면, 묘한 울림이 생긴다. 느리고, 무겁고, 지워지지 않는 선. 청년작가로서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시장과 이상, 생계와 예술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 그 과정이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벅차다. 그러나 ‘쓰다, 이중섭’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다시 다짐하게 되었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나는 나의 시간을 정직하게 기록하겠다고. 그의 선이 그랬듯, 나의 색과 캐릭터와 이야기 또한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흔적으로 남기를 바라며.
결국 예술은 거창한 선언이 아닌, 매일의 선택과 태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삶을,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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