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최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개한 ‘미국 해양 행동 계획(America’s Maritime Action Plan·MAP)’에 전 세계 모든 선사와 화주를 대상으로 입항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글로벌 해상 운송 전반에 ‘또 다른 관세’라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조선업판 트럼프표 관세 구상안’으로도 불리는 MAP은 동맹국 투자를 유치해 미국 조선소를 되살리고 미국 항만에 입항하는 외국산 선박들을 상대로 입항료를 받아 자국 조선산업 재건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백악관이 발표한 MAP은 지난해 한미 관세협상 당시 한국이 제안한 대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청사진이 베일을 벗고 처음 윤곽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 대미 투자 韓·日조선사, 초기 물량 자국서 건조 가능
MAP에는 미국 조선·해운산업 강화를 위한 방안이 총망라됐다. ▲투자 유치 목적의 ‘해양번영구역(MPZ)’ 지정 ▲프로그램 자금 조달을 위한 ‘해양안보신탁기금(MSTF)’ 조성 ▲외국산 선박을 대상으로 부과하는 ‘보편적 수수료(입항료)’ 등을 담고 있다.
또 MAP은 미국이 중국의 조선 건조 역량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미국은 한국·일본과 함께 자국 조선을 되살리기 위한 역사적 협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미국의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이 1% 미만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현실을 반영해 한국과 일본과의 협력이란 문구를 넣었다는 분석이다. 자국 조선산업의 독자적인 소생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미국 본토로 유치하는 것이 재건의 유일한 선택지임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핵심 유인책은 ‘브리지 전략(Bridge Strategy)'이다. 한국, 일본의 파트너사가 미국 내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합작 투자 및 협업 체계를 구축할 경우 다수의 선박 건조 계약 중 '초기(초도) 물량'은 파트너사의 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도록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동시에 파트너사의 자본과 기술로 미국 조선소의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후속 물량부터 미국 현지에서 건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 내 생산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다.
◆ 조선업계, 브리지 전략 통한 수혜 기대감
마스가를 통해 미국이란 거대 신규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인 한국 조선이 이번 MAP에서 일본과 함께 핵심 협력국으로 명시된 점은 향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선박 건조 수요란 호재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MAP에 처음 등장한 브리지 전략을 통해 불확실성도 다소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마스가 본격 추진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돼 온 미국 내 관련 법규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미국 연안에서의 화물 운송에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만 쓸 수 있도록 규정한 ‘존스법’과 해외 조선소에서의 미 해군 함정 건조를 원천 차단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이 대표적인 장애물로 거론돼 왔다. 미 행정부가 현실을 인정하고 분명하게 절충 의지를 보인 만큼 국내 조선업계로서는 현지 법·제도 내 우회로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희망이 돋아나고 있다.
반면 MAP의 내용 중 글로벌 해운업계를 가장 당혹스럽게 한 부분은 '해양산업 기반 보호'에 명시된 노골적인 무역 장벽이란 지적이다. 보편적 수수료(입항료)의 신설이 대표적이다. 미국 항만에 입항하는 모든 '외국 건조 상선'에 실린 수입 화물 중량(kg)당 최소 1센트에서 최대 25센트의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보편적 수수료의 골자다.
◆주요 선사 미국 입항 불가피 간파...미국 발주 종용
MAP은 kg당 1센트이면 10년간 660억달러(약 95조원), 25센트일 경우 10년간 1조5000억달러(약 2170조원)를 입항료 명목으로 징수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미 당국은 이를 신설되는 해양안보신탁기금(MSTF)으로 전용해 자국 조선소 및 인프라 재건에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용 중인 상선의 99%가 한국·중국·일본 등 미국 외 국가에서 건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미 수출입에 투입되는 모든 선박과 운용 선사, 화주에게 부과하는 일방통행식 '또 하나의 관세’란 분석이다.
MAP의 계획대로 실행될 경우 최대 국적 선사인 HMM은 물론 MSC·머스크·CMA CGM 등 글로벌 주요 정기(컨테이너) 선사들에 ‘수수료 폭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향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 선사들은 기존 가성비에 기반한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지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대신 건조 비용이 아시아보다 5배 이상 비싼 '미국산 선박'을 어쩔 수 없이 주문하거나 용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동차, 철강 등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올해 초 반도체까지 추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며 “이들 제품의 관세를 내기 싫으면 미국에 직접 공장을 짓고 투자하라는 엄포를 해운·조선 분야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글로벌 주요 선사들이 수익성 측면에서 미주 항로를 포기할 수 없다는 약점을 노리고 “수수료를 내기 싫으면 향후 상선은 미국 조선소로 발주하라”는 메시지를 입항료 및 MSTF 신설이란 방식으로 표출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MAP의 제안이 협력의 구체적 사업 목록이나 일정, 참여 주체(정부·기업·조선소)와 역할 분담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고 표현도 ‘협력 지속’ 수준에 머문 만큼 해운·조선업계가 벌써부터 민감하게 반응하기는 이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구체화 될 후속 조치와 별도 발표가 나와봐야 협력의 범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마스가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관련 정책 및 발언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특성상 불확실성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규정하며 이번 MAP의 현실화 가능성을 낮게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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