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한 일상부터 눈물 자국까지, 타계 전 10여년간 남긴 기록
유족, 서울대도서관에 일기 등 6천여종 기증…아카이브 조성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그 남자가 나에게 해준 최초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었다."
고(故)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자 마지막 장편인 '그 남자네 집'을 대표하는 이 문장은, 출간 4개월 전인 2004년 6월 박 작가가 쓴 일기장에서 원석의 형태로 먼저 등장한다.
22일 서울대와 유족에 따르면, 2004년 6월 18일 자 일기에는 "나 돌아가리라 구슬같은 처녀로. 하나의 나뭇잎 하나가 떨리는 것은 엄청난 풍파를 몰고갈 운명안의 떨림 풍파를 일으킬 운명, 솜털 엄청난 풍파로 몰고 올 운명의 떨림"이라 적혔다.
반복 표현이나 띄어쓰기에 얽매이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른 영감을 거침없이 써 내려간 흔적이다.
눈길을 끄는 건 이 대목에 남겨진 눈물 자국이다. 힘있게 이어지던 잉크 자국 사이로 '처녀', '엄청난', '풍파', '떨림' 같은 단어들은 작가가 흘린 눈물에 맞아 희미하게 번져있다.
박 작가는 여간해선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맏딸이자 수필가인 호원숙씨는 "혼자 계셨을 때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눈물이 어른거리는 정도를 본 것도 드물다"며 "감정을 쉽게 노출하는 분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일기장에는 창작의 고충과 희열도 소탈하게 담겼다.
그는 "저녁때 비로소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켜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린다(2008년 2월 16일)"고 인간적인 토로를 하는가 하면, "내일까지는 다쓸 것 같다. 야호(2008년 8월 29일)"라며 소녀처럼 기뻐하기도 했다.
평생 주부로 살다 마흔에 늦깎이로 등단한 박 작가는 "늙는 것도 예술(2010년 6월 15일)"이라며 자신의 인생관과 예술관을 드러내거나, "알맞게 죽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고 있으니까"라며 담담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생전 일기를 즐겨 쓰지 않던 박 작가가 2011년 타계 전 10여년간 남긴 이 기록들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호원숙씨는 "나이가 들면 잘 잊어버리게 되다 보니 하루하루를 반추하려 의도적으로 또 사적으로 쓰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의 이러한 체취는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정관에 마련된 '박완서 아카이브'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대 개교 80주년과 박 작가 타계 15주년을 맞아 조성된 이 공간은 대신파이낸셜그룹이 기부한 30억원과 유족이 기증한 장서 및 유품 6천여종을 토대로 약 140평 규모로 꾸려졌다.
전시장에는 박 작가가 1985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사용한 책상에 직접 앉아볼 수 있는 체험형 공간도 마련됐다. 서울대는 "아카이브엔 생전 작품을 집필하던 서재와 마당을 재현한 공간을 중심으로 생활 유물과 귀중 육필 자료가 전시됐다"며 "박 작가의 문학세계뿐 아니라 삶의 궤적과 사유의 흔적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 기간은 4월 30일까지였으나, 관람객들의 호응에 2개월 연장될 전망이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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