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통상 무기였던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 및 보편관세에 대해 최종 위법 판결을 내리면서 글로벌 통상 지형이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지난 2025년부터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 수입품에 무차별적으로 부과됐던 10~25%대의 고율 관세가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단이다.
우리 산업계는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핵심 주력 품목 전반에 짓눌려 있던 관세 비용 부담을 덜어내며 수출 경쟁력을 회복할 '가뭄 속 단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법 122조 등을 동원한 '플랜B' 타격을 예고하면서, 단기적 긍정 효과와 중장기적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이른바 '희비 쌍곡선'이 그려지고 있다.
트럼프 관세는 그동안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고 한국 주력 산업의 대미 수출 단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킨 주범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2025년 이후 부과된 관세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며 소급적 무효화 가능성이 열렸다.
우선 한국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완성차 등 고부가가치 품목은 즉각적인 수혜가 예상된다. 미국 시장 내 판매 가격을 낮출 여력이 생기며, 관세 장벽이 걷힌 틈을 타 경쟁국 대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를 잡게 됐다.
가장 큰 화두는 수천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기납부 관세의 환급(Refund)이다. 대법원이 환급 절차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아 당분간 극심한 행정적 혼란이 불가피하다. 한국 수출 기업들과 현지 수입업체들은 대규모 공동 소송을 준비 중이며, 이 소송의 결과에 따라 기업별 재무제표에 미칠 긍정적 파급력의 규모가 결정될 전망이다.
대법원 판결로 위법성이 인정된 것은 'IEEPA의 남용'에 국한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무역법 122조를 활용해 새로운 글로벌 1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 조항은 미국의 국제 수지 적자가 심각할 때 대통령이 최대 150일간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단계적으로 새로운 관세 체계로 전환될 뿐, 단기적 통상 충격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역설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계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관세 카드가 막힌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한·미 통상 협상에서 비관세 장벽이나 '공정무역 규범' 조항을 더욱 거칠게 압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의 반응은 복합적이다. 대법원 결정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를 일부 완화했으나, 대체 관세 조치 도입, 미·중 무역 갈등 재점화, 환율 변동성 확대 등 꼬리 위험(Tail Risk)을 부각시키며 투자 심리를 짓누르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요동치는 가운데, 산업별·기업 규모별 체감 온도와 대응 전략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반도체 및 자동차의 경우 단기적인 수출 마진 개선 효과는 확실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대법원 판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상수로 두고 미국 내 생산기지 확대(현지화)를 추진해 온 만큼, 기존 투자 전략을 그대로 밀어붙인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관세 도입 가능성이나 보조금 정책(CHIPS Act, IRA)의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에 비해 자체적인 국제 법률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 수출기업들은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특히, 복잡한 관세 환급 소송 절차를 밟기 위한 비용과 행정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징벌적 관세의 법적 근거를 허물어 한국 수출 업계에 단기적 숨통을 틔워주었다"면서도 "미국 우선주의라는 거대한 조류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다. 관세 도구의 재출현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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