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표 정책 브랜드였던 ‘상호관세’가 연방대법원에서 위법 판정을 받으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외 정치·경제 전략에 중대한 균열이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사법부를 “우리 국가의 수치”라고 맹비난하며 정치적 정면돌파를 선언하는 한편, 다른 법적 수단을 총동원한 ‘새 관세’ 카드로 관세 정책의 동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20일(현지시간)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각국에 차등 부과해온 상호관세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의회 승인 없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인 상호관세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하면서, 트럼프의 1호 대선 공약이자 집권 후 핵심 치적으로 내세워온 관세 정책의 심장부가 법적으로 좌초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는 판결에 찬성한 6명의 대법관을 겨냥해 “우리 국가의 수치”, “애국심도 없고 헌법에 불충하다”고 공격하며, 이들을 “법원 내 민주당 인사들”이라고 지칭했다. 이어 “그들은 미국을 다시 강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에도 자동적으로 ‘반대’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해 이번 사안을 정치적 진영 대결 구도로 끌고 가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JD 밴스 부통령도 대법원 결정을 “명백한 무법 행위”라고 비난했다. 법리적 반박보다는 지지층 결집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불법 이민 강경 단속에 대한 여론 역풍에 이어, 상호관세 위법 판결까지 겹치면서 집권 2년차 트럼프 행정부는 연초부터 연이은 악재에 직면했다.
상호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밀어붙인 상징적 조치였다. 그는 각국에 대한 일방적 관세 부과가 무역적자를 줄이고 대미 투자를 촉진해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미국 경제가 지난해 호황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의 효과”라며 자신의 노선을 정당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는 패소 시 “끔찍한 일이 될 것”, “그 자체로 국가안보에 재앙”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공포 마케팅’을 펼쳤다. 그러나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가 권한 남용이라는 대법원의 판단으로, 그간의 정치적·정책적 명분은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번 판결에도 자동차·철강 등 특정 품목에 대한 ‘품목별 관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럼에도 상호관세를 통해 대규모 투자 유치와 국내 일자리 창출을 자신의 성과로 포장해온 트럼프의 내러티브에는 균열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일방적이고 일관성 없는 관세 정책에 대한 피로감과 불신이 상당한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세전쟁’에서 상황에 따라 유예·번복을 거듭했고, 국가마다 다른 잣대를 적용해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수입 생필품 가격 급등 우려가 커지자 일부 품목에는 관세를 내리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것도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더해지면서 반(反)트럼프 성향 유권자의 반감은 물론, 핵심 지지층 내에서도 실망감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은 ‘대체 관세’다. 그는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이르면 사흘 뒤부터 150일간 전 세계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동시에 무역법 301조에 따라 주요 교역국을 상대로 관세 조사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5개월이 되는 그 기간 우리는 다른 나라에 공정한 관세를, 또는 그냥 관세를 부과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조사를 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걷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IEEPA 기반 상호관세가 막힌 자리를 글로벌 관세와 301조 조사로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위법 우회’ 카드는 대법원 판결 전부터 워싱턴 정가에서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 정책을 물러설 수 없는 승부처로 삼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배수진으로 읽힌다. 그는 “대법원 전체와 의회도 인정해야 할, IEEPA 관세보다 더 강력한 수단·방법·법규·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며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한 관세 공세를 예고했다.
관세 수입의 활용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수입을 재원으로 대규모 세액공제와 ‘트럼프 계좌’ 입금 등 유권자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분배 정책을 구상해왔다. 향후 9년간 전체 관세 수입이 약 3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을 바탕으로 한 청사진이었다. 상호관세가 막히면서 이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따라 글로벌 관세와 무역법 301조에 따른 국가별 관세를 적극 활용해, 상호관세로 기대했던 ‘유권자 배분 정책’의 재원을 보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무역법 122·301조와 더불어 품목별 관세를 위한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동원하면 “올해 관세 수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행정부가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관세 수입을 방어하겠다는 뜻을 뒷받침하는 분석이다.
관세 환급 문제는 또 다른 폭발력을 지닌 뇌관이다. 기업들이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220조~250조원 규모의 관세 환급 요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논의되지 않았다”며 “소송으로 다퉈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발적으로 돌려줄 의사도, 재정 여력도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규모 집단소송이 이어질 경우 행정부와 기업 간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 1년간 세계 경제와 안보 질서를 뒤흔들어온 상호관세의 법적 토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이를 계속 밀어붙이기에는 명분이 크게 약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3월 말~4월 초로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중국과의 장기적인 무역전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국을 상대로 부과한 상호관세의 정당성이 미국 사법부에 의해 부인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안보 현안을 놓고 벌인 외교 협상에서 활용해온 ‘관세 지렛대’의 약화를 의미한다. 그는 브라질의 내정 문제, 인도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문제 등을 이유로 상호관세를 인상하는 등 관세를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왔다. 그러나 IEEPA에 기반한 국가별 차등관세가 위법 판정을 받은 만큼, 설령 새로운 형태의 관세를 도입하더라도 ‘관세의 무기화’는 이전만큼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기존 무역합의 이행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한국은 자동차 관세와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이행이 더디다는 이유로 이들 관세를 다시 올리겠다고 경고해왔다. 상호관세가 법적으로 막힌 상황에서 이런 위협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무역합의는 유효하다”고 강조하며 압박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수년간 우리를 뜯어낸 다른 나라들이 황홀해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 기뻐하며 거리에서 춤추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춤추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투자 약속과 안보 협력 이행을 압박하는 동시에, 이에 반발하는 국가에는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추가 압박을 가하겠다는 포석이다.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징 정책에 법적 제동을 건 동시에, 미국 내 권력 분립과 대외 통상 전략의 향방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의 서막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 관세 카드로 정치적 타격을 상쇄할 수 있을지, 아니면 ‘관세 무기화’ 전략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는 분기점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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