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한정용 기자] 생수 시장의 ‘무라벨’ 도입과 식품 정보의 디지털화가 맞물리며 소비자 알 권리가 사각지대에 놓였다. 환경 보호라는 당위성 속 소비자가 식품 정보를 확인하는 기초 권리마저 모바일 기기 숙련도에 따라 차별받는 ‘정보 사각지대’가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계도기를 거쳐 다음 해부터 먹는샘물(생수)의 무라벨 의무화를 실시한다. 기존 라벨에 적힌 제품 상세 정보는 병뚜껑 윗면에 인쇄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어 정보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무라벨 제품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잉크 인쇄가 생략된 무라벨 생수 용기의 물리적 가독성 저하다. 무라벨 전환이 의무화되며 제품명과 소비기한, 수원지 등 최소한의 필수 정보는 투명한 페트병 용기나 뚜껑에 직접 표기해야 한다.
명도 대비가 전혀 없는 투명한 플라스틱 표면에 같은 투명한 색으로 튀어나오게 새겨진 양각 글씨는 시력이 저하된 고령 소비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조차 육안으로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무라벨 1년 유예 기간이 끝나는 내년부터는 동네 편의점이나 마트 매대에서도 라벨 생수를 찾아보기 힘들어져 현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생수는 일상생활에서 매일 소비하는 필수재인 만큼 고령층이 겪는 정보 단절의 불편함은 다른 품목보다 훨씬 크고 빈번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라벨을 없애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인다는 친환경적 취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나 소비자가 매대에서 제품을 고를 때 마시는 물의 정보를 직관적으로 식별하기 힘든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환경 보호라는 목적 달성에 매몰돼 제품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 소비자의 기본권이 훼손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의견이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직접 브랜드별 상품 상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한 소비자의 이용 불편은 심화할 것”이라며 “이런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리적 가독성 저하에 더해 제품 상세 정보의 디지털 전환 역시 정보 소외를 가중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라벨이 사라지면서 생수병에 새겨진 물리적 표기는 최소화돼 구체적인 미네랄 성분표나 상세한 교환·환불 규정 등은 뚜껑 등에 인쇄된 QR코드로 넘어갔다.
건강에 민감한 고령 소비자의 경우 수원지나 칼슘,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 함량을 꼼꼼히 따져보는 경우가 많지만 핵심 정보 표기가 디지털 공간으로 숨어버린 셈이다.
제품 QR코드 도입은 한정된 포장재 면적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모바일 기기 활용이 서툴거나 QR 스캔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이러한 시스템이 오히려 상세 정보에 대한 접근을 완벽히 가로막는 '디지털 장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매일 마시는 물의 정확한 성분을 파악하고 안전하게 소비할 권리가 디지털 정책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생수 무라벨이 도입이 되며 정보 불균형에 대한 우려는 인지하고 있다”며 “1년의 유예 기간 동안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검토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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