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AI) 그래픽처리장치(GPU) ‘베라 루빈’ 최상위 모델에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사실상 독점 공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HBM4를 성능별로 이원화하는 ‘듀얼 빈(Dual-binning)’ 전략을 도입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초고성능 시장 진입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SK하이닉스는 공급 안정성을 앞세운 주력 공급자 지위를 유지하는 역할 분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베라 루빈 GPU에 적용할 HBM4를 성능 기준으로 두 개 등급으로 나눠 조달할 계획이다. 최상위 티어는 동작 속도 11.7Gbps 이상 초고성능 제품으로 AI 인프라용 하이엔드 모델에 탑재, 차상위 티어는 10Gbps대 제품으로 일반 주력 모델에 사용될 전망이다. 특정 업체 의존도를 낮추고 수율 리스크를 분산하는 동시에 제조사 간 경쟁을 유도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베라 루빈 최상위 모델(NVL72)에 들어갈 HBM4 공급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HBM4 개발 초기부터 최고 성능 제품군을 목표로 삼았고, 10나노 6세대(1c) D램을 선제 도입해 경쟁사보다 한 단계 앞선 공정을 적용했다. D램 미세화는 집적도와 전력 효율, 동작 속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다. 실제 삼성 HBM4는 국제 표준 대비 40% 이상 높은 최대 13Gbps 속도를 구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성능 경쟁보다는 공급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10나노 5세대(1b) D램 기반 HBM4 양산 체계가 이미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엔비디아와의 오랜 협력 관계도 강점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HBM4 전체 물량의 60~70%를 차지하며 차상위 티어 제품을 중심으로 주력 공급자 역할을 이어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엔비디아의 이번 조달 전략 변화는 국내 메모리 업체 간 경쟁 구도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전 HBM3E 세대의 부진을 만회하고 초고성능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울 기회를 잡았고, SK하이닉스는 가격 주도권 일부를 양보하더라도 안정적인 대량 공급으로 수익 기반을 유지하는 구조다. 최상위 등급 HBM4는 하위 제품 대비 20~30% 높은 가격이 책정될 가능성이 커,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하이엔드 GPU 수요가 전체 AI 반도체 시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확대될지는 변수다. 오픈AI·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빅테크의 설비 투자 방향에 따라 일반형 모델 비중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HBM 경쟁의 본질은 기본 토대인 D램 성능과 수율”이라며 “삼성전자의 1c D램 수율이 본격적으로 안정화되면 HBM 시장 판도도 다시 한번 출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엔비디아는 내달 미국 산호세에서 열리는 ‘GTC 2026’에서 베라 루빈 GPU를 공식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발표를 기점으로 HBM4 공급 구도와 국내 메모리 3사의 역할 분담이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