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에서는 그동안 새로운 경향과 시대를 넘어서는 작품들을 창조하고 구시대의 악습에 도전하며 진보하는 여성 작가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해 왔다. 이번엔 이 범주에서 빠질 수 없는 시대의 선구자 아그네스 데네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그네스 데네스(Agnes Denes, 1932 ~ , 헝가리 출신 미국인)는 과학, 철학, 수학, 언어학, 심리학을 섭렵하며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시, 음악, 역사 등 모든 인문적 통섭에 지구 생존의 도전을 대지예술이라는 시각 철학으로 표현하며 문화적, 사회적 이슈들을 시대에 제언하는 환경 예술의 아이콘이다. 그녀는 인류와 자연 세계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근본적으로 초점을 맞춘 선구적인 개념 및 환경 예술가로, 종종 지구에 미치는 생태 위기와 인간의 영향을 강조한다.
도시를 넘어 사회 재편을 꿈꾸는 농촌 미학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종 전시회에서 성별과 생태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 억압을 지구의 황폐화와 연결 짓는 성공적인 전시들까지 예술가들이 농업 생태학에 대한 미학적 접근 방식을 활용하면서 예술가, 큐레이터, 갤러리 운영자들이 점점 더 도시를 넘어 사회 재편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무스 매거진(Mousse Magazine)에서 농촌 공간으로 이동하는 예술적 지형에 관한 일련의 에세이를 쓴 파블로 라리오스( Pablo Larios)는 인터뷰에서 가르시아-도리(García-Dory)와 같은 작가들이 "농촌을 지탱하는 기관의 형태를 테스트하고 개발하여 농촌을 문명의 중심 패러다임으로 보는 또 다른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소개하며 대지예술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과 도시의 탈중앙화는 예술가들이 삶을 선택하는 방식과 예술의 유형뿐만 아니라 시장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데네스가 이미 40여 년 전 작품 <밀밭-대립, 대결(wheat field—a confrontation, 1982)> 에서 보여주며 대지예술의 지평을 농촌과 자연에서뿐 아니라 도시 안으로 확장해 줬다. 밀밭-대립,>
가장 비싼 땅에 뿌린 자본주의 역설의 씨앗
비평가들은 일반적으로 <밀밭> 을 예언적이고 계시적이며 신탁적 의미를 보여준다고도 했고, 혹자는 “심오하고 초현실적이며 우주 보편적” 이미지라고 하며 다각적인 주목을 보냈다. 밀밭>
뉴욕에서 공공 조각품 제작 초대를 받았던 그녀는 전통적인 공공장소의 미화된 권력의 야만성을 거부하며 "공공 조각품이 이미 충분하고 말 위에 앉아 있는 사람도 충분하다”며 이 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그러나 뉴욕시 공공미술 기금은 허드슨강 주변 빈 공간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든 '도시 환경 사이트 프로그램' 시리즈의 두 번째 프로젝트를 그녀에게 의뢰했다. 작품의 운명은 시작부터 비극적이었다.
맨해튼 배터리 파크 매립지는 자유의 여신상과 미국 이민의 관문이던 엘리스 아일랜드를 마주 보는 미국 이민 초기부터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1960년대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가 세워지면서 추가 쓰레기 매립이 이루어지며 황폐해져 갔다.
2.2에이커의 <밀밭- 대립, 대결> 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인 월스트리트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조성됐다. 밀밭->
금빛 들판이 깨운 도시인의 목가적 낭만
자본과 생명의 근간이 되는 밀의 상징성은 유리와 강철의 도시와 극명한 물리적 대비를 이루며 드라마틱하게 시각화되었다. 도시, 자본주의, 상업적 경제력을 결합한 강력한 역설을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는 '도시의 탐욕'과 '헤게모니의 상아탑'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자본주의 파라독스의 생태학적 우려와 세계 기아, 쓰레기 폐기물을 생산하는 “잘못된 우선순위”를 지적하며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촉구하고 있다.
작업은 쓰레기들을 치우는 것으로 시작해 200대의 트럭으로 다시 흙을 채우며 시민들과 함께 초기 생태적 환경을 만들었다. 고랑을 만들고 씨를 뿌려 몇 달간 관리하자 세계무역센터를 마주 보며 기괴하고 가짜 교회와 같은 마천루를 전경으로 밀이 자라갔다. 물결치는 금빛 들판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마치 밀밭에서 고층빌딩이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은 밀밭 사이로 난 산책길로 돌아왔고 그 '목가적 전환'은 도시인들의 잃어버린 감성을 일깨웠으며 농촌과 도시, 세계 간의 ‘중요하지만 종종 무시되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의존성’을 돌아보게 했다. 또한 작가가 의도한 금융 시스템의 부조리는 토지의 가치가 크게 상승함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가 왜곡되었다는 ‘의심의 씨앗’을 자본주의에 매몰된 도시인들에게 상기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밀밭> 은 생태학적 개념적 공공 예술의 궤적에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데네스는 공공미술의 초점을 전통적이고 기념비적인 설치물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일시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작업으로 전환하며 공공미술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밀밭>
최근 페미니스트와 생태학 담론 사이에서 부활하여 우리에게 감성적으로 비치는 <밀밭> 의 유산은 세계의 대도시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지난해 스위스 아트 바젤에서 작가와 작품에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비엔날레의 초대작이 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작품의 생명과 의미가 이어지고 있다. 밀밭>
뉴욕의 밀밭에서 수확한 씨앗들은 환경 운동가와 대지예술 작가들, 도시 재생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며 본래의 의미로 재생되어 도시 안으로 살아 돌아오고 있다. 수확된 약 1000파운드(450kg)의 밀은 미네소타 아메리칸 아트 박물관인 세인트 폴에서 열린 '세계 기아 종식을 위한 국제 아트쇼' 전시회(1987-1990)를 시작으로 전 세계 28개 도시를 순회했다.
밀의 여정이 끝날 때마다 아그네스는 씨앗 한 꾸러미를 나눠주며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도록 초대했다. 추수된 건초는 뉴욕시 경찰청 기마대에 기증되어 말의 먹이로 쓰였다.
추수된 밀은 2009년 런던 달스턴과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 중부의 12에이커(약 4만8560㎡) 부지에 다시 심겼다. 3월부터 10월까지 밀라노 시내에서 밀을 파종하고 가꾸며 수확하는 과정은 도시 스카이라인을 재구성하는 건축적으로 중요한 도시 재생 계획에 초점이 맞춰져 공공 정원을 포함하여 재배됐다.
빵이 되어 돌아온 예술 그리고 영감의 축제
<밀밭> 프로젝트는 음식과 에너지를 공유하고, 땅을 보호하며, 개인과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하고 사회적, 경제적 성장을 촉진하면서 세계화된 세계에서 점점 더 소홀히 여겨지는 모든 생명과 번영의 원천인 땅의 구체적인 단순함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밀밭>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예술 작품뿐 아니라 보편적 개념이자 공동체 구축과 사회 참여의 원동력으로 파종, 수확, 탈곡까지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 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지난 2024년 미국 몬태나주의 보즈만에서는 <밀밭-대립(wheat field-confrontation)> 이 <밀밭-영감(wheat field-inspiration> 으로 재구성되었다. 20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학생, 방문객, 주민들이 작물을 돌보고 잡초를 뽑았다. 수확 축하 행사 '영감(An Inspiration)'은 몬태나 주립대학교 식물과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전통적인 손 수확 시연과 밀 가공과 관련한 다양한 단계의 행사로 진행됐다. 밀밭-영감(wheat> 밀밭-대립(wheat>
가공된 밀은 지역 푸드뱅크에 전해져 빵으로 만들어졌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 밀을 심는 것은 생태학의 근원을 상기시켰다. 도시 개발과 경관 미화 이상의 추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졌으며 살아있는 예술 작품이자 영감받은 장소로써 커뮤니티 공간이 활용되는 전 과정이 일회적 설치 예술 작품으로 진화했다.
2024년 스위스 아트 바젤에서는 밀을 옮길 수 있는 유로 팔레트에 심어 미래에 필요할 수 있는 전위 작물 재배(또는 데네스가 생각한 대로 '수직형 밭')의 실험 버전으로 연출되어 아트페어가 끝난 후까지 추수할 수 있도록 남겨졌다. <밀밭- 대립을 기리며(honoring wheat field – a confrontation)> 라는 제목으로 전시되며 박람회 기간 원본 작품의 비디오와 사진, 문서를 전시하여 지난 40여 년의 작품에 경의를 표했다. 밀밭->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광장 1000㎡를 수백 개의 흙 팔레트로 덮었고 씨앗과 녹색 새싹으로 가득 찬 팔레트는 현대 자본주의 도시 풍경의 특징인 도시 재생 벤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박물관, 갤러리, 미술 박람회에서 예술을 접하는 방식의 규칙을 재구성하여 보여주었다.
95세 노작가가 던지는 사고의 시작
이렇듯 그녀가 40여년 전 시작한 <밀밭-대립> 은 일회적 대지예술 작업에서 진화하며 밀이 상징하는 보편적 가치인 인류 생계의 원천이자 성장, 변화, 번영의 강력한 메시지를 알리고 밀이 어떻게 문화적, 사회적으로 깊은 관련성을 유지하는지 강조하며 단순한 생존부터 미래에 대한 가장 큰 희망까지 인류의 핵심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왔다. 밀밭-대립>
헤아릴 수 없는 부와 나란히 놓인 이 작품은 시적으로 인간의 핵심 가치와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현대 사회가 간과하고 있는 근본적 가치들을 직시하게 했다. 또한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적, 사회적 차원에서도 삶의 우선순위를 재고하고 재평가하기 위한 직접적인 조치를 요구하며 인류의 열망과 미래 방향을 설득력 있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밀밭이 황금 들판으로 자라고 시민들이 돌아와 산책하고 쉬며 잊혀졌던 목가적 낭만을 회복하면서 작품의 의미는 밀과 함께 자라며 진화해 갔다. 허드슨 강을 정기적으로 들어 오는 배들은 트윈 타워를 배경으로 펼쳐진 황금 밀밭을 향해 경례를 보냈고 밀밭에서 보낸 시간을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는 시민들이 늘어갔다.
이 작품은 예언적, 계시적 신탁으로 시작하여 밀이 자라고 열매를 수확하는 과정과 함께 그 의미가 세계로 확장되었고,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를 다루는 그녀의 선견지명이 미술 비평가들로부터 칭송받으며 현대 미술의 중심 주제로 주목받고 있다.
아그네스 데네스는 원작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계적인 기아, 자원의 잘못된 관리, 공간과 환경의 잘못된 관리 및 오용이 존재한다”며 95세의 나이에도 뉴욕의 소호에서 기후 변화, 지속 가능성, 인류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 환경 및 개념적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는 예술가의 새로운 역할이 장식, 상품 또는 정치적 도구 그 이상의 예술, 즉 우리가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끝없는 모순에 의문을 제기하는 예술을 만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사고 과정을 끌어내고 시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
AI 시대에 들어서며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간의 생계를 간과하는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 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 생애를 바쳐 외치고 있는 노존(老尊)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볼 때이다.
☞대지예술(Land Art)=1960년대 후반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미술 경향이다. 갤러리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사막이나 해변 같은 자연 경관 속에 작품을 설치하거나 자연물 자체를 소재로 삼는다. 물질로서의 예술을 거부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여성경제신문 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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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한양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교육심리를 부전공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재직 중 1997년 도미하여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NOVA)와 조지타운, 조지 워싱턴,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미술사와 지질학 등을 수학했다. NOVA 지질학 랩(Geology Lab) 연구 부교수와 메릴랜드 포토맥의 글렌스톤 뮤지엄(Glenstone Museum)에서 근무하며 학술과 예술을 넘나드는 전문성을 쌓았다. 2023년 귀국 후 설악산 한계령에 농업회사법인 모란재를 설립했으며, 현재 자연과 농업, 전통과 예술을 결합한 뮤지움을 기획함과 동시에 Upper East 전시기획사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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